[박철근의 재계산책] 이건희 회장의 '염화시중의 미소'

입력 2010-07-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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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재계 최고의 화두는 단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전경련 회장 수락 여부였다.

이같은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경련 회장단 만찬이 열린 지난 15일 저녁 한남동 승지원 앞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고, 재계 총수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이 회장에게 전경련 회장직 수락을 요청했고, 이 회장은 이를 '가타부타' 확실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삼성측은 "이 회장이 긍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은 정중하게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15일 저녁 회장단 만찬 결과를 설명하던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의 입에서는 의미 심장한 단어가 나왔다.

정 부회장은 "회장단이 만장일치로 이 회장에게 전경련 회장직을 건의했지만, 이 회장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며 "다만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로 대신했다"고 말했다.

'염화시중의 미소'란 '염화미소(拈華微笑)'로도 불리는 불교용어로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은 과거에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가섭(迦葉)이란 사람만은 석가의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 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 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 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는 데에서 유래됐다.

그렇기 때문에 정 부회장이 이날 이 회장의 태도를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단어로 정의한 속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 회장도 삼성과 전경련의 깊은 인연(전경련은 삼성 창업주인 故이병철 회장이 설립)를 간과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전경련 회장직을 맡을 시기가 아니라는 뜻인지, 아니면 삼성그룹의 공식입장 처럼 이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을 의사가 없다는 뜻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염화시중'이라고 한다면 무언의 긍정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니 이같은 의구심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부회장의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 회장은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결국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전경련은 차기 회장을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 총수 중 누군가가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0순위’에 올려놓고 있지만, 이 회장은 수차례 이를 고사하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의 이 회장에 대한 애정은 '해바라기 사랑'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부회장의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발언이 이 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간접적인 카드인지, 아니면 이건희 회장과 전경련간 통하는 무엇이 있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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