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한국기술투자 前회장 등 14명 기소
2000년대 초반 국내 벤처신화를 이끌었던 제1호 창업투자회사(벤처캐피털)가 검찰조사 결과 횡령과 배임, 주가조작 등 온갖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유상범 부장검사)는 23일 계열사의 주가를 조작하고 수백억원의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한국기술투자의 지주회사인 KTIC홀딩스 전 대표이사 서모(35)씨 등 2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한국기술투자의 회장을 지낸 서씨의 부친(63) 등 1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주가조작에 가담해 부당이득을 챙기고 달아난 개인투자자 김모(42)씨 등 3명을 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KTIC홀딩스의 전 대표이사 서씨는 2008년 3월부터 작년 8월까지 해외자본을 가장한 사채업자와 직원, 작전세력 등을 동원해 계열사인 'KTIC글로벌'의 주가를 조작, 35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금융감독기관의 감시를 피하고자 실제는 사채업자가 운용하는 '퍼시픽얼라이언스 에셋매니지먼트'라는 이름의 해외펀드가 계열사의 지분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며 장기간 주가조작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기술투자에서 횡령한 공금 168억원 등 총 470억원과 73개의 차명계좌가 활용됐으며 고가매수 및 허수매수 주문, 통정거래, 시ㆍ종가관여주문 등 통상적인 주가조작 수법이 총동원됐다고 검찰은 전했다.
주가조작으로 2008년 주당 1천500원 수준이던 KTIC글로벌의 주가는 작년 한때 두배가 넘는 3500원 가까이 뛰었으나, 이후 채권자나 사채업자들이 손실을 줄이려 주식을 대거 매도하면서 960원까지 추락, 개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
서씨 등은 또 작년 1월 사채 등을 조달해 대형 해운업체와 그 계열사를 인수한 뒤 471억원을 횡령하는 등 모두 807억원을 횡령하고, 무담보 대여 등으로 회사에 69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이 횡령한 돈 가운데 절반이 넘는 612억원은 회수되지 않은 상태이며, 인수합병(M&A) 이전에 자산총계 3000억원 가량의 견실한 기업이던 해운업체는 사실상 형체가 없는 회사로 전락했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1986년 설립된 한국기술투자는 국내 첫 창투사로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됐으며, 200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펀드를 모집해 큰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업계의 대표주자로 군림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설립된 창투사가 오히려 불법 또는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기업사냥꾼의 행태를 보였다"며 "현재 활동하는 창투사에 대한 감독과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