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기업'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입법예고 기한이 3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녹색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정부 부처간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부처간 기싸움이 한치 양보없는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면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기업들은 불똥이 자신들에게 언제 튈까 노심초사하며 몸을 낮추고 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식경부와 환경부가 온실가스 배출정보데이터(인벤토리) 주무부처 지정을 놓고 첨예하기 대립하고 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는 어느 부문에서 얼마 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가를 보여주는 통계다. 지난달 17일 입법예고된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는 이산화탄소 환산시 연간 2만5000t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감축의무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들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량과 공정별 배출량, 감축계획을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있다.
따라서 인벤토리가 있어야만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후속 조치가 가능하다. 각 부처가 녹색 주무부처를 두고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동안 지경부와 환경부 중 어느 부서를 주무부처로 할 것인가를 두고 부처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입법예고 과정에서 2개 부처를 주무부처로 하는 잠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입법예고 기한인 오는 8일까지 관계부처 협의와 여론 수렴을 거쳐 시행령을 확정해야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실측방식을 두고 두 부처간 한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 쟁점은 무엇?
온실가스 배출 실측방식을 두고 환경부는 지난 1997년 이래 개별 사업장의 굴뚝에 원격모니터링 시스템(TMS)을 부착해 황산화물 질산화물 등 유해화학물질 뿐 아니라 유독성 물질까지 실시간으로 체크해왔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환경부는 기존 수도권총량제 대상 사업장(1~3종) 중 관리업체에 속한 굴뚝은 약 1000개 정도로 보고, 약 150억원의 부담이 든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이 굴뚝 중에 50%는 산소 측정기가 달려 있어 실제 비용은 약 절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경부는 지난 30년간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에너지관련 통계작업을 담당해왔다는 이유로 근거로 주무부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탄·석유·천연가스·우라늄 등 주요 에너지원의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활용하면 굳이 환경부가 아니더라도 쉽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환경부가 주장하는 방식의 활용할 경우 현재 실측기기가 설치된 사업장의 굴뚝에만 실측기기를 설치해도 약 6000억원이 든다고 추정했다. 환경부 관리대상이 되는 모든 사업장에 실측기기를 설치하는 경우 1조원이 추가로 든다는 계산치를 내놓았다.
두 부처간 국장급 이상 실무협의를 수차례 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기업'
문제는 지금껏 부처간 싸움에 정작 바뀌는 제도에 준비를 해야 하는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지경부와 환경부가 서로 유리한 부분에 방점을 찍고 싸우다 보니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잘못 얘기하면 환경부에 찍히는 상황에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시행령이 지나치게 규제 위주지만 이에 대한 의견개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이번 시행령에 대해 스피드(속도)·스코프(범위)·시스템(체계)의 이른바 '3S`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규제 추진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업에 요구하는 정보가 너무 많은데다 추진체계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정비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곳이 또 있다. 지경부 산하기관인 에너지관리공단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이 공단 명칭을 '에너지기후변화공단'으로 바꾸려했으나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일부 개정안'이 막판 환경부의 반대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좌초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의된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무난히 통과해 국회 본회의 상정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입법 마지막 절차에서 제동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관리공단의 명칭 변경의 본회의 상정되지 못한 배경에는 환경부와 지식경제부의 기싸움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두 부처간 기싸움이 결국 대리전 양산으로 번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