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급 경영진 퇴진 대신 김용환 사장 등 '젊은피' 수혈...글로비스 가치 키워 활용 가능성
현대차그룹의 후계구도에 닻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핵심 경쟁력 강화와 판매 극대화를 통한 지속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행보는 빨라졌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참석을 시작으로 본격 해외 현장경영에 나서기 시작, 현대차 체코공장 준공식에도 참석했다.
곧이어 정 부회장은 같은 달 18일 현대차의 대표 세단인 신형 쏘나타 발표회장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광폭행보를 보였다. 이처럼 정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은 '젊은 피' 수혈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승진 '광폭행보'...경영전면 나서
그 실체는 지난 12월 24일 있었던 현대차그룹의 임원승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동안 정몽구 회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김동진 현대모비스 부회장이 퇴임했고, 김치웅 현대위아 부회장, 김용문 다이모스 부회장 등 원로급 부회장들이 물러났다. 대신 김용환 현대차 사장, 정석수 현대모비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이번 임원 승진 명단에 사장 승진자는 한 명도 없는 반면, 226명에 달하는 40대 중·후반의 이사와 이사대우 승진자를 발표, 젊은 피를 대거 수혈 받았다.
업계에서는 기존 경영진 및 임원진에 대한 교체 폭을 최소화하고 젊은 임원들을 대거 포진한 것에 대해 정 부회장으로 하여금 인재 선택의 폭을 넓혀줘 궁극적으로 조직 장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했다.
지난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 및 영업지원사업부장으로 출발해 10년 만에 부회장까지 오른 정의선 부회장에게 이제 남은 숙제는 경영권 승계다.
◆임원 인사 통해 '젊은 피' 수혈...경영권 승계 '숙제'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정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에 가속페달을 밟고는 있지만, 정작 정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주요 계열사 지분율이 약하다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지배구조의 근간이 되는 계열사들 중 기아차 주식 1.81%만 보유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6월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토넷의 합병으로 현대오토넷의 지분 6.77%를 가지고 있던 글로비스는 현대모비스 지분 0.67%를 보유하게 됐다. 정 부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31.88%를 보유한 최대주주.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가 경영권 승계의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그룹 물량 지원으로 글로비스를 성장시켜 정 부회장 보유 주식 가치를 올리고 난 이후, 이 지분을 팔아 핵심 계열사 지분 매입용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거다.
실례로 글로비스는 지난해 12월 1일 현대차와 2010년 1월 1일부터 2012년 12월 31일까지 2년간 완성차 해상운송계약을 3559억원에 체결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이 31.88%, 정몽구 회장이 24.38%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글로비스에 현대차그룹이 '물량 몰아주기'를 한 것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웠다.
◆정의선 부회장 핵심 계열사 지분 취약...글로비스, 경영권 승계 주역(?)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정몽구 회장 일가가 전체 지분의 56%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비스가 그룹 내 물류 수송을 독점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회사기회 유용'(회사의 이익으로 잡혀야 할 사업기회가 대주주 등 개인에게 돌아가게끔 만드는 것)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정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 승계를 위해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8월 31일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차 지분 5.84%를 전격 매입, 현대차 지분을 14.95%에서 20.78%로 높였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최소 20% 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이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재의 순환출자구조에서 벗어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데 시동을 걸었다는 관측을 제기했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은 주식 사고팔기를 통해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고리를 끊었다.
◆순환출자구조 해체, 지주회사 체제 전환 '시동'
현대모비스는 공시를 통해 "계열회사인 현대차 발행주식을 인수함으로써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완전한 전환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남아 있는 순환출자구조를 끊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라는 전형적인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78%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5.24%를, 다시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구조를 끊고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5.66%)과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16.88%)을 처분해야 한다.
또한 정몽구 회장의 일가가 이 주식을 확보할 경우,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서열의 지주회사 골격이 갖춰진다. 정 회장 일가가 이 주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글로비스의 가치를 키워서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이 정 부회장의 안정적 승계를 위해 어떤 묘를 내 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