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안정이 가장 큰 과제..지나친 감독으로 실기말아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금융시장이 개방돼 있고 수출 주도형 경제이기 때문에 대외 충격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특히,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융시스템이 외부충격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금융회사의 건전성, 특히 외환부문의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정부와 금융감독 당국이 과거 외환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외환건전성 감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각종 경제정책 포럼을 통해 강조한 발언들이다.
정부는 최근 국내 은행에는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 리스크 재발 방지 차원에서 상당한 수준의 외환유동성 규제를 실시하고 외국은행 국내지점에 대해서도 외환포지션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강화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은행들의 중장기 외화대출 재원조달 최소 비율을 현행 80%에서 90%로 끌어올리고 외화자산의 2%를 의무적으로 A등급 이상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토록 의무화하는 등 최근에 마련된 외환시장 안정 조치가 이에 해당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이처럼 외환건전성 강화에 목청을 높이는 가장 큰 이유는 금융시장 및 환율 안정 등을 통해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을 차단하려는데 목적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당국의 규제가 추가되는 것이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 과거 외환위기를 직접 겪었을 뿐 아니라 시장의 이상 징후만 포착되기만 하면 위기설이 나도는 우리 금융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들이 단기에 너무 많은 외화를 빌려와 장기로 운용하면서 외환시장 리스크를 키운다는 지적과 함께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증시는 급락하고 환율은 폭등하는 등 적잖은 후유증을 겪었다는 점에서 외환건전성 확보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인식이 정부와 금융당국 관계자들사이에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외채의 절대 규모보다 외화 차입과 대출간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데 따른 시스템 위험이 점증하는 상황 속 금융위기로 이러한 잠재적 위험 요인이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 충격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이러한 점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들의 무분별한 외화 차입을 비롯, 외환 운용에 일정한 제동을 걸기로 한 것은 나름 필요한 조치이고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그러나 금융당국이 여전히 외환건전성 강화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것은 글로벌 경제가 이제 막 위기를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불안 요인은 아직도 널려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상업용 부동산 문제로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달러 캐리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금융시장 위험성도 여전하다. 외환보유액이 27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이를 둘러싼 적정성 여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민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의 불투명한 세계경제 상황을 생각해도 외환건전성 제고 문제는 정책 당국 입장에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과 EU(유럽연합) 등 주요국 경제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더블딥 도래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고 미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 달러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등도 여전한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외환건전성 관리 감독이 중요하더라도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경직적일 경우 자칫 실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달러화에 대한 수급과 관련해, 시시각각 변하는 외환시장내 마켓 메이커를 자청하는 외환 딜러들은 "당국이 외환건전성 감독은 강화하되, 외환거래를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키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 외국계은행 선임 딜러는 " 국내증시에 유입된 헤지 펀드, 핫머니 자금이 외환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주범이기는 하나, 이들 핫머니에 대한 관리 감독과 외화보유액의 시장 안정화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감독이 이뤄져야지 외환거래를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정 연구원도 "헤지 펀드 유출입에 대한 직접 규제보다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헤지 펀드의 투명성 제고나 헤지 펀드 활동과 관련한 정보 수집, 건전성 규제 등으로 외환건전성 제고를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