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된 기름값 앞에 고민 깊어지는 외환당국
국제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외환당국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원ㆍ달러 환율의 가파른 하락을 제어하기 위해 환율 상승을 지지했던 외환당국의 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선 위로 급등한 가운데 한국이 주로 도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 가격도 가파른 오름세 기록하며 당국의 기존 외환시장 대응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현재 국내 외환시장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원ㆍ달러 환율 상승과 하락 재료가 혼재한 상황이라, 외환당국자들뿐만 아니라 시장참가자들 역시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국은 애초 달러당 원화값이 가파른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한국의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해 달러 매수 개입 카드를 꺼내들고 환율이 급격히 움직이지 않도록 수급 조절에 나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불거진 국제유가 상승과 최근의 달러화 약세 기조에 일시적인 변화 움직임이 일면서 환율 상승을 자극하는 재료들이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자 시장개입 카드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상황을 지켜보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최근 한 재정부 관계자는 "경기 회복이 구체화되더라도 이는 국제유가를 필두로 원자재값 상승과 맞물려 원화 강세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면서 "이 경우 외환당국의 개입 명분이 점차 약해질 수도 있다"고 발언, 당국의 고민의 우회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증권업계 한 이코노미스트도 "국제유가 상승이 경상수지 흑자 규모 축소에 따른 달러 공급이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염두한 외환시장 대응이 필요하다"며 "유가가 앞으로 꾸준하게 오름세를 탈 경우, 현재와 같은 당국의 직간접적인 개입 스탠스가 적잖은 영향을 받게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달러당 원화값이 지난 10월 중순 1150원선 부근으로 떨어질때까지만 해도 당국의 달러 매수 개입 명분은 살아있었지만 지난주 1100원대 후반으로 재차 오른 가운데 유가 상승 소식이 겹치면서 이 같은 명분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국제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자 재정부는 물론 경제계 안팎에서 유가 상승을 비롯한 국제 원자재값 상승이 바닥을 다지고 회복하려는 우리 경제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점 또한 당국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유가 상승세가 계속되면 수입 물가가 다시 들썩일 것이고 우리 기업들의 원자재 구입비는 더욱 치솟을 것이며 환율마저 오름세를 탄다면 작년 하반기와 같은 실물경제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외환당국이 현 원ㆍ달러 레벨에서 달러화 하락을 막기 위한 달러 매수 개입 카드를 꺼내 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중은행 외환 딜러들도 "국제유가 상승세가 글로벌 경기회복 분위기를 틈타 재차 가파른 오름세를 타면서 최근과 같이 환율 변동성 확대 우려마저 겹치면 당국이 달러 매수 개입에 나서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국제유가 급등은 수입 물가에 이어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 물가에까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만큼 정부 당국자들도 반길 일이 아니다.
특히 물가 안정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도 유가 상승기에 최근 환율 상승은 더욱 반갑지 않을 터. 외환당국이 종전과 같이 환율 상승 마냥 지지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정부는 최근 환율 급변동으로 인한 외환시장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근원적 대책을 마련하고자 외환시장 관련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