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엿새 만에 미·일·중 정상과 통화를 마치며 주변국과의 정상외교에 물꼬를 텄다. 이 대통령은 한미 줄라이 패키지 타결 시한(7월 8일)을 약 한 달가량 앞두고 있는 만큼 당장 외교 핵심 축을 한미 관계에 둘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익 중심의 균형·실리외교'에 외교 기조의 무게추가 실려 있어 중국과의 관계 설정 등에도 상당한 공을 들일 전망이다. 이 대통령의 균형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10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미·일·중 정상과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 이어 9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이날 오전 시진핑과의 통화를 이어갔다. 한반도 주변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 중 3국 정상과의 외교에 첫 단추를 꿰면서 지난 6개월간 사실상 중단됐던 정상 외교 정상화에 신호탄을 쐈다.
당장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과 주한미군 감축, 한미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등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의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빡빡한 일정에도 15∼17일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관세협상을 비롯한 패키지딜의 실타래를 푸는 데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3 비상계엄 이후로 '코리아 패싱'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한국의 정상외교가 본궤도에 올랐음을 알리고, 동시에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하루빨리 민감 현안들에 대한 협의에 나서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시 주석보다 이시바 총리와 정상 간 통화에 먼저 나선 것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정책에 대한 일본과의 정책 공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중 관계 재설정도 주요 과제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핵심 기조로 두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관계 역시 개선한 반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는 그만큼 소홀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다 최근 한국 정부는 중국과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 불법 구조물 설치 논란, 한국 기술·인력 유출 및 중국의 제조업 시장 장악 등의 갈등 관계까지 안고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앞서 취임선서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강조했다. 후보 시절에는 "한미 동맹도 중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하고 원수질 일은 없지 않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 정부의 가치외교를 에둘러 비판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관계 역시 국익과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경제·안보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험난한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균형·실리 외교의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이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통화가 상견례격인 정상 간 첫 통화였던 만큼 한한령(중국의 한류 제한령) 등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논의는 오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을 초청하며 양국 관계의 해빙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다음 APEC 의장국은 중국"이라며 양 정상의 상호 방문 가능성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