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완 한국외국어대 경영대학 교수(대한리더십학회 회장)

하지만 문제는 정치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선 기업과 조직 내 의사결정은 ‘탄핵’이라는 극한의 사태를 불러온 정치 리더십과 비교할 때도 결코 건재하지 않다. ㈔대한리더십학회가 올해 3월 실시한 설문에서 ‘우리 사회 및 조직이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각각 4.4점, 3.7점(5점 만점)이었다. 이 수치는 단순한 불만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리더십 붕괴의 심각성을 명확히 반영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리더와 리더 양성 시스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를 운영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통해 정책 자문, 인재 발굴, 리더십 교육을 실현하며 유능한 학자와 관리를 체계적으로 양성했다.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은 ‘대성학교’와 ‘흥사단’을 통해 체계적인 민족 교육과 리더십 훈련을 실시했다.
그뿐 아니라 근대 산업화 시기에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전국 각지에 공동체 리더가 배출되며, 풀뿌리 차원의 리더십이 작동하는 등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의식 속에는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천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다양한 영역에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첨단 공정 경쟁에서 TSMC와 미국 기업에 밀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위기를 감지하고 결단을 내릴 리더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다.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드러난 먹튀 논란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윤리의식의 실종이자 조직 자체의 방향 감각이 마비되었음을 보여준다.
과학기술 분야는 더 암울하다. 양자컴퓨터 개발 투자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고 있으며, 의료계와 정부 간의 지속적인 충돌 또한 소통 단절과 리더십 결핍의 결과다. 지금 국민은 묻고 있다. 이 나라에 과연 책임지는 리더가 존재하느냐고.
이 전방위적 리더십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첫째, 한국 사회에는 학연·지연에 기반한 리더십 카르텔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공정한 선발을 가로막고 무능한 리더를 양산해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구조를 만든다. 둘째, 교육 시스템 자체가 리더 양성에 부적합하다. 정답 암기와 순응을 강요하는 입시 중심 교육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협업과 공감 능력을 억누른다. 결국 ‘스펙형 인간’은 양산되지만, ‘리더형 인간’은 자라기 어렵다. 셋째, 리더 개인의 권력 집착 역시 큰 장애물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와 MIT 슬론(Sloan) 연구에 따르면,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이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후계자 양성을 회피한다. ‘내가 아니면 조직이 무너진다’는 착각 속에 승계는 미뤄지고, 조직은 미래를 잃는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리더십 위기를 단순한 ‘개인적 자질 부족’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적 실패로 인식해야 한다. 리더십은 어느 한 개인의 탁월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선발 시스템, 열린 소통 문화, 지속 가능한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리더십 생태계 구축, 교육 시스템 전환, 기업 문화 혁신이 병행될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리더를 기대할 수 있다. 과거에 머무는 리더가 아닌, 미래를 열어가는 리더를 위한 새로운 출발이 절실하다. 이제는, 리더십 자체를 다시 설계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