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임브라(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도대체 원인이 뭔지, 새로운 소식은 있는지 현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프랑스 비행기가 전력시스템에 충돌해 화재가 났다더라, 한 달 전부터 예고된 사이버공격이라더라 등 ‘카더라 통신’뿐이었다. 복구에 최소 3일, 길게는 한 달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정확한 정보가 없던 사태 초기 가짜뉴스들은 빠르게 퍼졌고 사람들의 표정엔 황당함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대형쇼핑몰은 문을 걸어 잠그고 보안요원들이 통제에 들어갔다. 비상전력으로 간신히 작동 중이던 현금인출기 앞에는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도로는 생필품을 사기 위해 나온 차량들로 붐볐고 상가 주변은 사람들까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결제시스템 다운으로 대형마트가 폐쇄되자 현금거래가 많은 소규모 슈퍼마켓에 사람들이 몰려 생수, 식빵, 통조림, 양초, 휴지 등을 쓸어 담기 바빴다. 해외토픽에서나 보던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신기하기도 했고 우리는 뭐 해먹고 버티나 걱정도 밀려왔다.
설상가상으로 수도에 이어 통신 서비스도 중단되면서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시계, 전등 역할 말고는 쓸모가 없어졌다. 대신 귀한 몸이 된 것은 양초와 건전지, 라디오, 손전등 그리고 화로였다. 포르투갈의 한 가격비교사이트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대정전 기간 동안 라디오의 수요는 4594%, 건전지 수요는 1728% 급증했다. 또 사람들은 먹통이 된 통신 서비스를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다행히 7시간 만에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전력이 복구됐고 밤 12시께엔 포르투갈 전역에 전기가 공급되면서 대규모 정전은 일단락됐다.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된 건데, 유럽의 전력망은 나라마다 연결돼 있어 전기를 서로 사고 판다. 포르투갈은 특정 시간대 전기를 생산단가보다 저렴하게 스페인에서 구입하는데 정전 발생 당시 전기의 30%가 스페인산이었으며, 스페인 전력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대량의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포르투갈도 한순간 블랙아웃이 된 것이다.
스페인 통신사 EFE의 추산에 따르면 이번 이베리아 반도 대정전으로 60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2003년 이탈리아 대정전(5600만 명 피해) 이후 20여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유럽의 정전 사태란다. 하지만 대정전 발생 열흘이 지난 지금도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피해액도 수십 억 유로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있을 뿐 구체적인 집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임브라(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cheh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