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생에너지는 자원안보의 보루

김윤성 한국에너지공단 비상임이사

1973년 아랍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에 섰던 국가들에 석유 수출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린다. 석유 수출국들은 석유생산량을 줄였고, 국제 원유 가격은 세 배 이상 올랐다. 흔히 오일 쇼크라 부르는 이 사건은 20세기 후반기 세계경제와 정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실공히 전략물자가 된 석유, 에너지 안보에 선진국이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느끼고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를 설립한 것도 이때다.

근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저유가를 밑에 깔고 긴 번영을 누리던 서구 세계에 ‘지구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졌을 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이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에너지원에는 천연가스, 에탄올,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이 있었다. 태양광과 풍력 기술 개발은 오일 쇼크 직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공급뿐 아니라 사이버 공격과 전략 광물 공급이 모두 에너지 안보 문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러·우 전쟁은 전 세계 공급망을 경색시키고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재생에너지 주요 부품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 가격이 30% 이상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의 장점은 에너지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는 가치도 있지만 어디에서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한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광물 같은 자원의 지정학적 민감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치도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증가할수록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낮아지므로, 에너지 안보에 순기여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기술을 작동시키는 물자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코발트, 리튬, 구리 같은 광물은 특정 지역에서만 채굴되기도 하고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처리되는 특징도 있다. 이들 광물은 앞으로 몇십 년 동안 계속 중요할 것이다. 매우 강력한 전략물자라는 뜻이다. 세계경제와 정치가 혼란 속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이 시기에 우리나라로서는 참 풀기 어려운 문제 하나가 어깨에 무게를 더하는 느낌이다.

21대 국회는 회기가 끝나기 직전인 2024년 1월에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자원안보 추진체계, 자원안보위기 조기경보체계, 핵심자원의 공급과 수요의 관리 등을 다루는데, 이때 핵심자원에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수소, 핵심광물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설비의 소재·부품이 포함된다. 재생에너지 기술을 구현시키는 자원 생산부터, 부품의 생산, 유통, 그리고 최종 수요자에 이르는 전 과정이 대상이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기술이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기술과 가격경쟁력에서 압도하는 태양광은 물론이고, 국내 수요 발굴이 늦어진 탓에 세계 기술과 격차가 있는 풍력 터빈도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그 밖의 기술들은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잘 뒷받침해 준다면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 시장을 잘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많은 물자와 설비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자원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 안팎으로 많은 파트너가 필요하다. 에너지당국이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보는 균형감각을 잘 유지하면서 많은 파트너와 협력하는 안정감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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