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소설가
이렇게 놓아먹이는 닭들은 운동량이 많아 닭장 안에서도 사람에게 쉽게 잡히지 않는다. 지붕 위로 훌훌 날아 올라가는 것도 사람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쉽게 한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는 속담 속의 말 그대로다. 때로는 새처럼 나무 위로도 훌훌 날아오른다. 어린 아이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말을 안 듣고 여기저기 돌아치면 어른들이 그냥 말을 안 듣는다고 하지 않고 놓아먹이는 닭 같다고 말한다.
닭을 동네 어느 한 집만 키우는 게 아니어서 낮 동안 동네 닭들이 모두 모여 함께 떼지어 다닌다. 여남은 마리의 닭들이 이 밭 저 밭 몰려다녀도 주인은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이놈 같은 닭들 가운데 어느 것이 자기 집의 닭인지 귀신처럼 골라낸다. 주인만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닭들도 잘 안다. 모여 다니다 보면 노는 정신에 팔려 알도 아무 곳에나 막 낳을 것 같은데 알도 잠자리를 찾아가듯 꼭 자기 집 둥지에 가서 낳는다. 잠자리를 잊지 않듯 아마도 알을 낳는 장소를 잊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주인만 자기 집 닭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닭들도 온종일 함께 모여 다니다가 저녁때가 되면 귀신처럼 자기 집을 찾아간다. 친구 따라 남의 집으로 가는 닭은 없다. 더러 울타리가 없는 남의 집 마당까지 들어가도 남의 집 닭장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를 찾아가는 것인데, 네 마리든 다섯 마리든 그 닭들이 매일 밤 홰에 올라앉아 잠을 자는 자리의 순서도 똑같다. 자리의 순서가 큰 닭 작은 닭 뒤섞여 있는 걸 보면 서열 따라 자리를 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저마다 익숙한 자리를 찾다가 그게 자리의 순서처럼 굳어진 것 같다.
재미있는 건 가끔 이 집 수탉과 저 집 수탉이 동네 암탉 모두를 놓고 벌이는 패왕 자리의 쟁탈전이다. 집집마다 수탉을 한 마리씩만 길러도 동네 닭들이 함께 모여 다니다 보니 수탉 간의 암탉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암탉들 사이엔 서열이 뚜렷하지 않아도 수탉들 사이엔 서열이 뚜렷하다. 서열 2위의 닭은 서열 1위의 닭에게 매일 쥐어뜯긴다. 저만치 피해 다녀도 일부러 찾아가 못살게 군다. 제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평소 군기를 잡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에겐 우리 집 닭이 옆집 닭에게 쥐어뜯기는 걸 보는 것보다 속상한 일도 없다. 암탉끼리는 잠시 먹이를 다투는 경우는 있어도 심하게 싸우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탉끼리는 얼룩덜룩한 목깃을 바짝 세우고 서로 벼슬을 쪼아대며 피를 철철 흘리며 싸운다. 수탉은 암탉 앞에서만 용맹한 것이 아니다. 수탉의 용맹함은 같은 수탉끼리의 싸움에서뿐 아니라 하늘의 솔개와 상대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이따금 암탉을 채가려는 매와 상대해서 매의 혼쭐을 빼놓는 수탉의 동영상을 볼 때가 있다.
김유정 선생의 소설 ‘동백꽃’에 보면 주인공이 점순이네 집 닭에게 쥐어뜯기고 온 자기 집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정말 용감해지는지 아닌지는 시험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옆집 닭에게 쥐어뜯기고 온 자기 집 닭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지는 어린 시절 충분히 경험했다. 옆집 닭에게 지고 온 자기 집 닭에게 달리 고추장을 먹이는 것이 아니다. 닭싸움을 바라보면 닭이 내가 되고, 내가 닭이 되는 것이다.
동네 닭들이 모여 활개 치는 봄이 멀지 않았다. 새싹도 벌써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