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온고지신(溫故知新)

입력 2025-01-16 19:1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조현성 서예가ㆍ한국미협 캘리그라피 분과위원장

새해 들어 첫 서설이 내리는 날 존경하는 선배님의 개인전이 있어 인사동에 나왔다. 늘 시간에 쫓겨 사는 터에 모처럼 한가로운 마음으로 작품을 즐기며 서예가로서 그분의 삶에 존경과 함께 숙연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일생을 붓과 함께하기로 뜻을 세우고, 붓을 벗 삼아 공력을 쌓았으며, 그 붓에 의지하여 지내 오셨다. 그러니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은 붓으로 업을 삼고 그 붓끝에 피어나는 먹꽃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한길만 걸어온 예술가의 삶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모든 이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않고 고귀하련만 지난한 예도의 여정에서 깨달음을 얻어, 고요한 몸짓에서조차 묵향과 품격의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은 그분께 축하를 드렸다.

전시장을 나오니 눈발은 잦아들고 소복이 쌓인 눈길은 제법 걸을 만했다.

유달리 예스럽고 세월을 견딘 모든 것에 맘이 끌리는 성향으로 인사동 골목의 고즈넉하고 쇠락한 분위기는 내 발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대로변의 상점은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린 국적불명의 요란하기만 한 공예품이 넘쳐나 문화예술의 거리가 무색하지만 오히려 좁은 골목은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집들이 이어지며 승동교회의 붉은 담장과 맞닿아 예스러움이 물씬하다.

그 옛날 뜨거운 가슴으로 인사동 거리를 누비던 문인지사들과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끼고파 좀 더 걸어보기로 맘먹는다.

인사동 초입의 거대한 건물은 지은 지 족히 일백 년은 됨직한데 도심 재개발에 포함됐는지 대부분 폐업 이주하고 건물 뒤편 일 층만이 이름도 고색창연한 ‘조선 살롱’이라는 카페로 성업 중이었다.

따끈한 차 한 잔이 간절했지만 혼자 들어가기 쑥스러워 망설이는데 드나드는 이와 자리 잡은 이가 대부분 서양사람 일색이다.

그들에게도 고풍스러움이 끌리는 접점인가 갸웃하며 피맛길을 통해 YMCA 건물 옆으로 나오니 선남선녀 예비부부들로 빛나던 귀금속 가게며 사회 초년생들이 설레며 고르던 즐비했던 대기업 제화점들이 공실로 썰렁하기만 하여 들떴던 마음이 순간 흐려졌다.

‘온고지신(溫故知新)’<사진>은 공자가 말씀하시고 ‘중용’에도 나오는데 옛것을 익힘으로써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과거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미래의 발전 또한 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온고지신’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여,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을 담은 새로운 작품을 해보리라 야심 찬 다짐도 해본다.

호고파산(好古破産)이라 하여 옛것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해 별로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힘을 쏟으면 신세를 망치게 된다는 교훈적 의미가 담긴 말도 있지만, 돈을 써가며 사들인 옛것은 없고 오로지 눈과 마음만으로 즐기고 부자가 된 행복한 하루였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