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의 금융의 창] 1997년 ‘종금사’…2024년 ‘서학개미’

입력 2025-01-12 18:37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정책평가硏 비상근연구위원·금융의 창 대표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24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상승하다가, 최근 글로벌 달러 강세 추세 속에 경기 침체, 정치 불안 등에 따른 대외 신뢰가 약화하면서 가파르게 급등하고 있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달러당 1500원 수준을 눈앞에 두고 한풀 꺾였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1500원을 넘어설 수 있고, 그때는 심리적 불안이 가세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외환위기 가능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작금의 환율 불안은 국내 상황에 실망한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도 있지만, 이보다는 소위 ‘서학개미’들이 대규모 자금을 달러로 바꿔 해외 증시로 투자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 이탈’ 부른 무리한 종금사 영업전략

‘서학개미’란 국내 주식시장에 집중했던 ‘동학개미’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해외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말한다. 이들은 특히 2024년 들어 테슬러와 엔비디아, 애플 등 빅테크 기업, 반도체 관련 고위험 ETF(상장지수펀드) 등 미국 주식투자 열풍을 타고 급증하였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자료로 추정하면 2024년 국내 개인투자자 전체 해외주식보관액은 약 500억 달러이다. 이는 2024년 한국은행 경상수지 추정 흑자 규모가 무려 900억 달러임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의 외환보유액이 오히려 감소한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24년 ‘서학개미’는 외환위기 직전 1997년 종합금융회사(종금사)를 떠오르게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산업구조가 중화학공업?위주로 전환되면서 외화자금 수요가 확대되고 기업의 자금 수요가 점차 복잡·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민간 중심의 외자 조달 창구를 마련하고, 기업에 대한 복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영국의 머천트뱅크(merchant bank)를 모델로 종합금융회사를 설립하였다. 1976년 4월 한국종합금융(주)이 최초로 설립된 후 1990년대 초반까지 6개 종금사가 유지되었다가, YS 정부 시절인 1994년 당시의 투자금융사들이 종합금융회사로 일괄 전환되면서 총 30개까지 늘어났다. 정부는 후발 종금사에 대하여도 인허가를 남발하면서 세련된 영업기법이 필요한 외환업무까지 허가하였다.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후발 종금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활개를 폈고, 외환위기 직전 마지막 불을 질렀다. 이들은 규제 규율도 존재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전 사회적 거품현상에 편승하여 국내외적으로 무리한 영업전략을 펼쳤다. 대외적으로 홍콩으로 들어온 일본자금을 싼 이자로 단기 차입해 비싼 이자를 받고 장기로 대출함으로써 만기 불일치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들은 단기 외화차입 자금을 갚기 위해 국내 콜시장에서 단기 차입한 원화로 외화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외환시장과 자금시장을 크게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1997년 말 당시 환율 2000원, 금리 30%를 넘어섰다.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하여 외환보유액을 무리하게 소진한 결과 어쩔 수 없이 1997년 11월 23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당연히 종합금융회사는 구조조정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졌다.

해외증시 투자열풍에 적절한 대응 필요

현재 국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미 증시 투자수익률의 격차도 커지면서 미국 투자로의 이동 열기가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종금사가 외환을 이탈시킨 주된 요인 중 하나라면 지금은 ‘서학개미’가 그 악역을 담당할지 모른다.

자기 자신의 수익만을 좇아 움직이는 것을 방치하다 보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켜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만일 상황이 급변하여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투자한 미국 증시가 큰 조정 국면에 진입하면 ‘서학개미’들은 그동안의 수익 이상으로 손실을 볼 수 있다. 그러할 경우 이들의 투자자금이 국내로 회귀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그러면 고스란히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1997년 봄부터 외채 만기 연장이 어려워진 홍콩진출 종금사들이 부채상환용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정부는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여 화를 불렀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자본자유화 등의 글로벌 추세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적절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