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젠슨 황에 울고 웃는 K-반도체, 초격차 어디 있나

입력 2025-01-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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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8일 전일 대비 3.43% 오른 5만73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개장에 앞서 지난해 4분기 영업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친 수준으로 발표됐는데도 3%대 강세였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이 앞서 열린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고대역폭메모리(HBM) 시험 통과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과 무관치 않은 반전이다.

젠슨 황이 7일(현지시간) 간담회에서 삼성을 밀어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삼성 HBM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가려면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는 발언도 했다. 삼성은 1년 넘게 품질 검증을 받는 처지다. ‘새로운 설계’가 달콤한 희소식일 까닭이 없다.

젠슨 황은 다만 “삼성이 매우 빠르게 새 설계를 만들어내고 있고,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성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부연설명을 했다. “테스트가 너무 오래 걸린다는 얘기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성미가 급하다. 그건 좋은 일이긴 하다”고도 했다. 해석의 여지를 넓힌 것이다. 전날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신제품인 지포스 RTX 50시리즈를 공개하며 “마이크론의 GDDR7을 탑재했다”고만 했을 뿐 삼성을 비롯한 한국 반도체 대표기업들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 달랐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그 직후 7일 코스피에서 내림세를 면치 못했다.

젠슨 황은 전날 한국 파트너 업체들을 도외시한 데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성급한 해석은 금물이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으로 펼쳐지는 첨단 기술 경쟁에서 주요 경쟁국들의 K-반도체 견제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는 점을 거듭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젠슨 황 또한 그 전선의 핵심 이해관계자다. 그 말 한마디에 시장이 춤출 정도로 영향력도 크다. 그 언행의 속뜻을 제 손금 보듯 들여다봐야 한다.

반도체, 특히 메모리 분야는 한국 독무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급변했다. AI 등장과 더불어서다. 젠슨 황이 CES에서 소개한 주요 협력사는 대부분 미국 빅테크 소프트웨어(SW)기업들이다. SW 기술이 빅테크를 낳고, 빅테크가 SW 기술을 다시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미국 내에서 구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자랑인 ‘초격차’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초격차가 살아 있는데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나. 국내 대표기업들의 주가가 젠슨 황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나.

구경만 할 계제가 아니다. AI 분야의 한국 경쟁력은 원천기술, 자본력 등 거의 모든 점에서 취약하다. AI반도체 경쟁에 명함을 내밀려면 정책 지원, 규제 혁파 등의 뒷받침이 시급하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간다.

반도체 산업을 살릴 특별법 처리조차 주 52시간 근무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회 각성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조성도 시급하다. 미국 백악관 상설기구인 과학기술정책국(OSTP)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OSTP 국장은 상원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우리 한국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와는 위상이 다르다. 전력망 보완도 늦출 수 없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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