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ㆍ경제학/前 한국경제연구원장
재산권 침해로 경제활동 자유 제한
이성으로 법창조는 ‘오류’ 깨달아야
더불어민주당이 소액주주를 위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총주주의 이익 보호,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에 의한 이사 선임, 분리 선출되는 감사위원인 이사의 수 확대, 사외이사의 수를 늘리는 것 등이다.
그런데 위의 쟁점들은 모두 상장된 주식회사의 지배주주 재산권을 침해하여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주식회사의 운행 원리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주식회사는 주주들이 자본을 모아 상업활동을 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자발적 결사체다. 상장된 주식회사는 기업을 창업하고 성장시켜 주식시장에 상장한 지배주주와 상장 후 주식을 사서 참여한 이른바 소액주주로 구성된다. 개정안에서는 이들을 합하여 총주주로 표현하고 있다.
주식회사는 회사의 자산을 운용·관리·처분할 수 있는 재산권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세 차례의 재산권 수정이 이뤄졌다. 먼저 많은 주주가 출자하면 자본 증가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면 의사결정 비용이 아주 커져 자본 증가에 따른 이익을 압도하므로 의사결정 권한은 소수의 대표단인 이사회에 위임된다. 이사회가 사실상의 주인이 되며, 흔히 지배주주가 대표이사가 된다.
다음으로 합명회사와 같이 주주가 무한책임을 지면, 경영 실패로 회사가 망했을 때 주주들이 큰 손해를 본다. 따라서 사람들이 출자를 꺼려 자본조달이 어려워진다. 주주의 이러한 손해를 줄이기 위해 유한책임 원리가 도입된다.
이와 함께 자본조달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주주가 손해를 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 즉 이사회의 경영에 불만인 주주는 누구의 승인 없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다(합명회사 출자자가 지분을 양도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출자자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즉 주식시장은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견제 장치이자 탈출구이며, 경영진에게는 주주의 이익을 크게 하려는 유인 제공 기능을 한다.
이와 같이 주식회사 제도는 사실상의 주인인 이사회가 회사를 경영하며 여타 주주들은 이들에게 경영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운행된다. 중요한 사실은 여타 주주는 넓은 의미에서는 회사의 주인이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보유하는 주식의 주인이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위의 개정 사항들은 모두 사실상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물론 자유 사회의 평화롭고 정의로운 질서의 바탕이 되는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며 번성한 사회는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제382조의3의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의의무를 추가하고,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에 총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주식회사는 주주로 구성되므로 회사와 주주는 동어 반복이다. 또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는 이미 제382조의 2항에 관련 민법의 준용을 명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가 엇갈리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회사의 흥망에 가장 큰 이해가 걸린 주주는 지배주주이며, 소액주주와는 달리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없으므로 지배주주가 의도적으로 회사에 해로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다만 회사의 합병·분할 등 지배구조 개편 시 지배주주의 이익을 우선했다고 판단되면 제382조 2항을 적용하면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횡령이나 신의 성실 배반 등을 제외한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 즉 경영 판단 존중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결국 개정안은 회사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식회사가 자발적 계약에 의한 결사체인 만큼, 다른 쟁점도 모두 회사의 정관으로 정하면 된다. 회사의 자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경영에 참여하는 사외이사 제도도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법(law)은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오는 과정에서 생긴 행동 규칙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지, 인간 이성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의원들이 입법(legislation)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다. 의원들이 수준 높은 의정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도덕과 법을 비롯한 행동 규칙과 각종 제도와 질서가 생긴 이유와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