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이 유난히 무겁다. 국정 난맥에 제주항공 추락 참사 충격까지 더해진 까닭이다. 울산 간절곶과 함께 해가 일찍 뜨는 일출 명소인 경북 포항시 호미곶 면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7회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 축전’은 30일 전격 취소됐다. 강원, 충청, 수도권 등지에서도 일몰, 일출 명소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전에 없이 어둡고 울적한 세밑 풍경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고 수습을 위한 노력과 소통을 강조하며 항공기 운영체계 안전점검을 지시했다.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혁신 필요성도 강조했다. 전날 새해 1월 4일까지 7일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지정한 데 이어 재난 컨트롤타워 책임자로서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앞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화염에 휩싸인 제주항공 7C 2216편 보잉 737-800 여객기는 승무원 2명을 제외한 탑승자 179명 사망이란 역대급 비극을 빚었다. 국적기 사고 중 3번째로 희생자가 많다.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 사고로는 최악이다. 그 과정 또한 현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국토부에 따르면 1차 착륙 시도 중에 관제탑이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경보를 했고 2분도 안 돼 조종사가 메이데이(구조요청)를 선언했다. 생존 승무원도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조류 충돌로 랜딩 기어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조류 충돌 그 자체로는 비행기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의문점이 수두룩한 것이다. 폭넓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정부는 사고 기종에 대해 전수 특별점검을 벌인다고 한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도 참여한다. 사고 기종은 사고가 잦았던 기종이다. 2022년 3월 중국에서 탑승객 132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 기록도 있다. 같은 계열인 737맥스는 잦은 사고 때문에 약 2년간 전 세계에서 운항이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도 했다. 사고 기종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심으로 101대 운항하고 있다. 기체 결함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전문가 다수의 견해지만 백지상태에서 철저하게 의문점을 파헤쳐야 한다.
이번 사고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론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찾기 어렵다는 딜레마도 뼈아프다. 최 대행 체제를 넘어서는 씁쓸한 딜레마다. 사고 수습 전면에 나선 기재부는 이런 유형의 사고 대응 경험이 없다. 법제에 따르면 이번과 같은 재난에는 국무총리가 컨트롤타워 본부장을 맡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차장을 맡아 대처한다. 경찰청장 지원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들 모두가 공석인 나라다. 최종 책임을 질 대통령도 제 자리에 없다. 심지어 사고 현장인 무안국제공항을 관장하는 한국공항공사 사장 자리마저 비어 있다.
대한민국은 새해를 하루 앞둔 현재 대행 또는 대행의 대행이 중책을 떠맡은 ‘대행 공화국’이다. 과연 안전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겠나. 새해엔 최 대행 다짐대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찾길 바라지만 한숨이 먼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