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AI 규제 실효성, 기본권 제한, 저작권 우려 속에도 통과
"적기에 법안 출발해야해…부족한 부분은 후속 입법"
탄핵 정국 속에도 ICT(정보통신기술) 입법 시계가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7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업계 숙원이었던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 법안)과 단통법 폐지안(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가결했다. 두 법안은 이제 국회 본회의 의결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AI 기본법은 정부가 AI 산업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인간의 생명이나 신체 안전과 관련한 AI는 '고영향 AI'으로 분류해 사업자의 책임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고영향 AI의 범위와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 공개 여부 등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특히 4조 2항 국방 '또는 국가안보 목적으로 개발되는 인공지능은 고영향 AI 적용을 제외한다'는 내용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우려가 이어졌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사태를 겪으면서 시민사회에서 인공지능이 국방이나 국가안보 목적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악용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조항이 "헌법이 기본권 제한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 최소 침해 비례 원칙이 반영이 안 돼 있다"면서 "국가안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을 배제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 반발했던 사실 조사 규정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박준태 국민의 힘 의원은 "(법안 통과는) 찬성한다"면서도 "기존의 19개 병합된 법안 원문에 없는 내용이 제정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람직한 입법 방식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후속 입법을 통해 법을 다듬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방위 야당 간사)은 "시민사회나 학계에서 우려가 있어서 앞으로 기본권 침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요한 후속 입법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제정법을 만들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찬반이 갈리지만, 적기에 출발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서 "법사위 운영 원칙상 '체계 자구 심사는 하되 내용은 잡지 않는다' 원칙에서 일단 통과를 시키고 부족한 부분은 해당 상임위에서 해결하겠다고 하니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냥 처리는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법사위에서는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생성형 AI가 학습 데이터로 삼는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두고, 과기정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정향미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AI가 저작권을 제대로 지켜서 학습 데이터를 활용했는지 여부에 대해서 창작자들은 굉장히 의심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향미 국장은 "현재 (창작) 권리자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에 있고 추가적인 논의를 더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에 올라가게 되어 시간이 너무나 촉박한 가운데 이렇게 호소를 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미 문체부 장관과 합의가 된 사항"이라며 "국장이 위계를 안 맞추는 것 같아 정당한 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담당 국장이 와서 저렇게 얘기하는 건 문체부 내에서도 조정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법안 논의를) 일주일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위원장께서 우선 개문발차했으면 하니 일단 통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