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수지 및 외화 유동성 개선 등이 뒷받침
최근 원화값이 닷새 연속 강세 기조를 이어가면서 서울 외환시장 참가자들사이에 원화 강세를 불러오는 요인들에 대한 분석이 활발한 모습이다.
이달 초 미 고용지표 악화 및 지방은행의 신용위기 뉴스 등이 전해지면서 글로벌 외환시장내 빠르게 확산됐던 안전자산 선호 흐름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특히, 지난주 초반 국내증시 급락과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원ㆍ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300원대로 급등한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 2분기 실적 개선이 되살린 위험자산 투자심리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국내외 기업들의 2분기 실적에 대한 불안감 해소로 그동안 수그러들었던 경기 회복 기대감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경기회복 기대가 투자심리 호전으로 이어지면서 국내증시 반등을 불러왔고 서울환시 참가자들에게는 안전통화로 인식되는 달러화에 대한 매수 심리를 약화시켰다는 것.
아울러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며 추가 반등세를 이어나가자 주식 매수를 위한 원화를 서울환시에서 추가로 조달하는 과정에서 쏟아진 달러화 물량도 원화값 강세에 한 몫했다.
즉,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를 사기 위해 내다 판 달러 물량이 환율 하락 기조를 이어가는데 보탬이 됐다는 설명이다.
◆ 자본수지의 급속한 개선도 원화 강세 지지
그러나 이 같은 원화 강세 흐름이 일시적인 모습이 아닌 추세적인 현상이라며 이제는 환율 하향 안정을 가져올만한 요인들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에도 점차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원화값 강세를 지지하는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 자본수지의 급속한 개선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작년 하반기와 올해 1분기 국내 외환시장 불안을 초래했던 직접적인 원인은 '디레버리징 쇼크'였다.
선진 금융기관들이 금융위기 확산에 대한 우려로 국내 민간 금융기관(주로 은행)들의 단기 대출금을 경쟁적으로 회수했기 때문이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 은행들의 단기 외화차입금 순상환 규모가 무려 529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환 속도는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자본수지는 무려 396억 달러 적자를 보였다.
그러나 3월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자본수지는 3~5월 중 61억7000만달러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내 자본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던 당시와 원ㆍ달러 흐름을 비교해보면 이 시점부터 뚜렷히 하향 안정 기조로 접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동석 유진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간 자본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게 된 주된 배경은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가 대거 유입된 것외에도 국내 은행들의 단기 외화차입 순상환이 진정세로 접어들었다는 점과 단기에서 장기 차입으로 전환된 점 역시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 은행권 외자조달 '물꼬' 트여..3월부터 본격화
앞서 언급한 국내 자본수지 개선 흐름이 시작됐던 3월부터 국내 은행들의 외화자금 조달이 잇따라 성공했다는 점도 돌이켜보면 원화값이 그간 약세를 벗어나 강세로 돌아설 것임을 시사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유진투자증권이 올 초부터 지난달 23일까지 국내 주요 기관 외화표시 채권 발행 실적을 분석한 결과, 상반기 중 총 88억8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 부실 사태의 후폭풍으로 심각해진 글로벌 신용경색을 뚫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억 달러의 글로벌 본드를 5년 만기로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이 사실상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외화자금 시장 불안은 가시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 가능하다.
이후 하나은행이 4월초 3년 만기로 발행한 10억 달러의 글로벌 본드 발행에 처음으로 성공하면서 5월 신한은행, 6월 국민ㆍ하나ㆍ신한은행이 각각 3~10억 달러 규모의 중장기 외화채권 발행에 잇따라 성공했다.
이처럼 시중 은행의 외자조달 여건이 점차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국내 외화 유동성 불안 우려가 줄어들었고 원ㆍ달러 환율의 하향 안정화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현석원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실장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 경제의 특징을 갖는 우리나라 특성상, 외화 유동성 불안은 곧 국가 신용도 위험과 직결돼 외환시장 불안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 실장은 따라서 "정부 보증이 아닌 시중 은행들이 자체 신용도를 바탕으로 외화자금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환율 불안 우려를 잠재우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원화 저평가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세 지속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막대한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점도 원화 가치에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는 구조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실물경기 침체로 수입이 감소한 데 따른 불황형 흑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 정착은 지난해 과도하게 하락했던 원화값이 여전히 저평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원화 가치가 저평가된 국면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가 나타남으로써 저평가된 원화 가치를 균형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경상수지 흑자 구조가 당분간 지속되는 한 원화값 강세 기조는 추세적이라는 판단의 주된 배경은 바로 이에 따른 것.
실제로 교역 상대국과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보면 원화 가치는 현재 20% 이상 저평가된 상황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세 지속에 따른 국내 외환시장 안정성 여부가 역외 참가자들의 투자 판단의 주된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시 경상흑자 기조가 당분간 지속되는 환율은 꾸준히 하락 압력을 받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