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위한 의견 수렴 차원
4선 이상 與 중진, 9일 회동
秋 재신임 두고 계파 갈등 양상
비상계엄 사태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실상 한 대표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며 퇴진 절차에 돌입한 만큼 ‘배신자’ 프레임을 벗고 ‘해결사’ 이미지를 구축할 기회가 주어졌다. 다만, 여전히 당내 계파 갈등은 발목을 잡는 변수다.
한 대표는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담화문을 통해 정국 상황을 수습하고 윤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친윤(친윤석열)계 추경호 원내대표까지 직에서 사퇴한 상황에서 한 대표가 위기를 기회로 바꿀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날지 주목된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한 총리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들과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 정성국, 주진우, 곽규택, 박정훈, 배현진, 장동혁 등의 의원들을 비롯해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김종혁 최고위원 등이 당사를 찾았다. 김 최고위원은 한 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힘든 상황이니까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다양한 의견을 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친윤계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9일 오전 국회에서 모여 당내 수습 방안을 논의한다. 여권 관계자는 “향후 로드맵에 관해 중진 의원들이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4선의 김태호 의원은 “질서있는 퇴진의 유일한 방법은 ‘탄핵보다 빠른 조기 대선’”이라며 “답은 ‘벚꽃 대선’”이라고 했다. 내년 4~5월쯤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친윤계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통령께서 국정 안정화 방안을 당에 일임한 것은 당 최고위원회, 의원총회, 여러 원로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들은 사의를 표명한 추 원내대표를 재신임해 현 지도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윤계 중진 권성동 의원은 7일 탄핵안 표결 무산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혼란스러운 시기에 원내지도부를 바꾸면 안 된다”고 제안했고, 대다수 의원의 찬성으로 재신임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친한(친한동훈)계 한지아 의원은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일부 친한계 의원이 기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추 원내대표가 재신임 결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다는 주변의 전언이 많다.
여권 관계자는 “친한계 의원 중에서 누군가 원내대표에 앉더라도 한 대표가 당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애초 계파 갈등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가 터져 어쩔 수 없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한 대표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자신이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타협한 것처럼 느껴진다”며 “중요한 건 여론”이라고 했다.
당 장악과는 별개로 한 대표의 행보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헌법 제7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군을 통수한다’고 돼 있다. 제 71조에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다.
윤 대통령이 직을 유지한 상태인 데다 현재 상황이 ‘사고’로 볼 수 있을지 해석의 여지가 남은 상황에서 당이 국정을 운영하는 건 위헌이라는 의미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한 대표의 국정주도는 위헌”이라며 “국민은 국정운영을 국민의힘이나 한 대표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