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세종대학교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이 점에 대해서는 NHK방송을 비롯한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거의 아무것도 보도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내(김건희 여사)의 스캔들도 있고,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서 계엄을 선포했다’ 정도의 해설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설명으로 사람들을 납득 시킬 수는 없다.
일본 언론 기사를 보면 그 외에 ‘한국의 국민성은 그런 것’이라거나 ‘대통령에게 직접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변적인 얘기가 나왔을 뿐, 쿠데타가 일어난 필연성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명확하게 보도하지 못했다.
5일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해 아사히·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쿄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계엄 후의 한국 상황을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국정 정체를 계엄령이라는 강권 수법으로 타파하려 했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북한의 강권체제를 비난하고 자유질서를 지키겠다고 한 대통령이 국회에 군을 들이는 등 강권을 휘두른 것은 본말전도”라고 비판했다.
닛케이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비상계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해 역시 계엄령 선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책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거취를 포함해 국민의 심판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신문들의 이런 논조는 계엄령이 실패로 돌아가 한국 내에서 윤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후에 나온 것이라 당연한 결과물일 뿐이다. 계엄령 선포의 본질에 관한 기사를 쓰지 못해 미국과 영국 주요 언론들과 대조됐다.
BBC의 5일 자 해설기사 ‘한국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뒤늦은 비상계엄령’과 뉴욕타임스(NYT)의 4일 기사 ‘계엄령에서 드러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압도적인 어둠, 결국 무엇이 갑작스러운 계엄령을 초래하고 말았는가’ 등 두 기사는 이번 계엄령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들 기사의 내용에서 공통적인 분석은 다음과 같다.
이번 쿠데타는 윤 대통령의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또 원래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선거 역사상 가장 근소한 승리로 취임한 대통령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 득표의 대부분이 전임자인 문재인에 대한 비판표였다. 즉, 국민의 강력한 지지로 탄생한 대통령이 아니고 취임 후에도 다양한 사건과 스캔들이 계속돼 지지율은 20%를 밑돌 정도로 낮은 수준이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 치러진 4월 총선거에서는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여당의 의석수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게 됐다. 여야 대립은 뿌리 깊고 지극히 심각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압도적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필연적으로 대통령의 예산이나 법안에 모조리 반대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를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이 정권 탄생 이후 계속되었고, 총선 이후 점점 더 심각해진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윤 대통령은 이런 ‘국회 운영의 막다른 골목’을 타개하기 위해 쿠데타라는 난폭한 수단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국회 운영의 막다른 골목’을 타개하기 위해 군대를 쓰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폭거다. 그렇지만 이상의 경위를 감안하면서 서구 언론은 윤 대통령이 용서받지 못할 폭거를 선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본 주요 언론에서는 한국 정치에 대해 이런 분석력이 실종된 지 오래된 상태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당시 언급했듯이 야당이 정말로 ‘북한 공산주의 세력’, ‘염치없는 친북 세력이나 반국가 세력’,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파괴하는 괴물’, ‘종북세력’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는 국민의 반발로 계엄령 해제를 선언했을 때조차 “탄핵, 입법조작, 예산조작으로 국가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무도한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본 일부 전문가들은 주요 언론들과는 달리 보다 예리한 분석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 전문가들은 설사 윤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더라도 지지율 하락, 야당의 반발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과격해질 것이며, ‘국회 운영 차질’은 쿠데타(계엄) 이전보다 더 심해질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한국 정치 상황은 전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 계엄령 사태는 유럽과 미국에 비해 일본 주요 언론들의 수준이 낮은 것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공개된 사실 정보만을 열거하고 일부 식자들의 코멘트를 단편적으로 삽입할 뿐, 구미 언론이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 ‘사건의 본질’에 관한 정보를 전혀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런 언론들의 행태가 일본 정부에 미치는 영향도 좋을 리가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