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라는데 '돌 맞고 가겠다'는 그 분 [데스크 시각]

입력 2024-1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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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정일환 부장

1789년 7월 14일, 루이 16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사냥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다”

저승에서는 아마 이날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7월 14일은 바스티유가 함락되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날로, 지금은 그 나라의 최대 국경일이다.

세계사가 바뀌던 순간에도 루이 16세는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와 술잔을 기울이며 태평스런 밤을 보냈다. 혁명의 주역인 국민의회는 이런 왕의 태도에 강한 경고를 낸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을 깨닫지 못한 루이 16세는 뒤늦게 군대를 동원해 반란을 진압하려 했다. 물론 진작에 분위기 파악을 끝낸 프랑스 군대는 왕의 명령에 코웃음을 쳤다.

세간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이 거론된다. 대통령 부부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미를 넘어 분노가 쌓이고 있다는 신호다. ‘그건 심하지’라며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루이 16세나 앙투아네트가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른다. 비록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루이 16세 부부는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위해 나름 많은 일을 했다(최소한 하려고 애썼다). 예컨대 유럽을 휩쓴 대기근이 풍요의 땅 프랑스로 밀려들자 루이 16세는 감자를 보급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악마의 식물’로 불리는 낯선 작물을 먹지 않으려 하자 왕과 왕비는 꾀를 냈다. 우선 왕비는 감자꽃으로 장식한 드레스를 입고 궁정 파티장을 돌아다녔고, 감자꽃은 이내 귀족의 패션 아이콘이 됐다. 왕의 계책은 더욱 신묘했다. 국영 농장에 감자를 심은 뒤 경비병을 세웠다. 표지판에는 “이 감자는 왕과 귀족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니 손대지 말 것”이라고 써놨다. 그리고 어둠이 깔리면 경비병들을 슬쩍 철수시켰다. 매일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기지가 없었다면 맥O날드는 ‘프렌치 프라이’ 대신 ‘도이치 프라이’나 ‘잉글리시 프라이’를 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치와 향락으로 모자라 무속신앙에 빠져 망해가던 나라의 국고를 파탄 낸 왕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자국민을 도륙하게 만든 왕비,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자 일본군까지 이 땅에 상륙하도록 스스로 문을 연 왕비, 급기야 조선 땅에서 청나라와 일본군이 전면전을 벌이는 서커스가 펼쳐지는데도 세도정치를 부활시켜 매관매직에 몰두한 왕비. 일제강점기를 열어 제친 장본인으로 지목당할 수준이지만, 그녀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드라마 대사 한마디 덕에 ‘명성황후’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기억된다. 지옥에서 만난 이완용을 “아마추어, 깔깔”하며 구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 특히 통치에서는 진실이 무엇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불법은 없었다’ 따위는 더욱 쓸모없다. 대중이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그게 여론이고 민심이다. 그 와중에 ‘오빠는 친오빠’라는 둥, ‘문제 될 게 없다’는 둥, 듣는 이가 고개를 떨구게 되는 변명까지 보태면 설마는 확신으로 바뀐다. 국정 지지율 19%, 2024년 11월 대한민국 대중의 확신이다. 투표권을 가진 권력의 주인이 심기가 불편해지면 일단 무릎부터 꺾어야 한 줄 혈로라도 열린다. 멈추라는데 “돌 맞고 가겠다”는 결기는 “짐이 곧 국가다”로 들린다.

잘하려고 애쓰는데 미움받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잘 하라는게 아니라 하지 말라는 것이고, 미운게 아니라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시정연설 건너뛰고 입장 표명 미루면서 치마폭에 숨지 말고 나오시라. 왜 우리 몫인지 모를 부끄러움 제발 주인께서 찾아가시라. 그런 다음 바꾸시라. 이제 겨우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생각, 태도, 사람까지 싹 바꾸고 다시 시작하기 딱 좋은 시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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