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그대의 ‘산중문답’

입력 2024-10-1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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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서예가ㆍ한국미협 캘리그라피 분과위원장

당고조 이연이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당나라는 국가의 기본 제도를 확립하고 법을 재정비하였다. 2대 황제인 태종에 이르러서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정관의 치’라고 불려지며 중국 역사상 위대한 번영을 이루는 큰 업적을 남겼다.

정치가 안정되니 경제가 풍요해지고 따라서 예술 면에서도 황금기였으니 문화예술이 찬란하게 발전하였다. 중국의 문학이 일반적으로 당시(唐詩), 송사(宋詞) 등으로 불리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특히 시가(詩歌)가 최고로 번성하였으니 성당(盛唐·713~765)은 중국시가 최고로 꽃을 피웠던 때였다.

안사의 난을 전후하여 나타난 중국 시가의 두 거장인 낭만주의 시선 (詩仙) 이백(李白)과 사실주의 시사 (詩史) 두보(杜甫) 등이 당시(唐詩)의 꽃을 활짝 피웠으니 이백의 자는 태백이고 호는 청련거사이다.

술을 몹시 좋아해서 자연과 술을 벗 삼아 한평생 방랑의 길을 떠돌아다녔던 술의 시인, 달의 시인으로 주옥 같은 많은 시를 남겼다.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나더러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냐길래/웃으며 답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절로 한가롭네/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로다.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한시로 이백이 지은 시 가운데서도 특히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며 ‘소이부답(笑而不答)’ ‘별유천지(別有天地)’ 등의 명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시이다.

이백은 거침없는 문장력과 뛰어난 재능으로 명성을 얻었고, 조정에 나아가 가슴에 품은 정치적 포부를 펼치고자 했지만 권세 있는 유력자들과도 마찰을 일으키며 중용되지 못하였다. 이후 일생동안 여러 번 은둔하여 공부했고 이 시는 은둔생활의 유유자적함을 표현한 문답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시의 첫 구절은 왜 은둔하고 있는지 은둔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누군가의 물음일 수도 있고 이백 자신의 자문자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백은 웃기만 할 뿐 즉답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말없는 가운데 속세를 벗어나 자연 속에 묻혀 한가로이 지내는(사진·心自閑 : 마음은 절로 한가롭다)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세 번째 구절 산속 경치의 아름다움과 환경은 단순히 경치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높은 경지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 속에 깊은 서정과 뜻을 응축해낸 낭만적인 시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세속명리를 떠난 은일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또한 이를 실천하여 별천지에 살며 매우 즐겁고 만족한 삶을 누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삶은 누리는 분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락(獨樂)일 것이며 탈속한 이상적인 선경(仙境)의 세계일 것이니 그 의연한 기개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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