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지었는데” 공사비에 발목 잡힌 정비사업…정부 대책도 ‘글쎄’

입력 2024-10-07 17:02수정 2024-10-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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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곳곳의 공사현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사이 공사비 증액을 둔 갈등 끝에 공사가 멈추거나 아예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이달 공사비 인상을 겨냥한 안정화 방안을 제시했으나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이 많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용산구 ‘이촌르엘'(이촌현대 리모델링 사업) 공사현장에는 공사중지 예고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공사인 롯데건설과 조합 간 공사비 인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서다.

올 4월 롯데건설은 4년 전 체결한 도급 계약상 공사비 2727억 원에서 4981억 원으로 공사비를 조정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3.3㎡당 542만 원에서 926만 원으로 83% 인상을 요구한 셈이다.

조합 요청으로 다수의 설계변경을 거친 데다가 지하 증축 등 설계변경이 많고, 원자재 가격도 많이 올라 불가피하게 공사비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롯데건설의 입장이다. 조합 측은 공사비 인상안 검토 결과 3.3㎡당 700만 원 초반대까지만 인상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입주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장위4구역 재개발 사업) 공사현장도 공사비를 두고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으로 중단 위기에 처했다. GS건설은 지난달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과 공사비 상승과 공사 지연의 이유를 설명하는 호소문을 붙였다.

GS건설 측은 “조합이 선정한 설계사의 도면 오류와 공사물가 폭등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며 “최근 해당 설계사의 파산 신청으로 공사가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준공까지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합은 2009년 3.3㎡당 346만 원에 도급계약을 체결한 후 2015년(439만 원)과 2022년(465만 원), 2023년(516만 원) 등 세 차례에 걸쳐 증액한 공사비를 또 올리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GS건설이 올 초 요청한 증액분은 722억 원이었으나 7월 483억 원까지 조정된 상태다.

서울시는 현재 두 조합에 공사비 분쟁 전문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양쪽 의견을 취합한 뒤 3자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공사비 인상으로 갈등을 겪다 결국 시공사와의 계약해지를 선택한 사업장도 있다. 강서구 방화6구역 재개발사업조합은 지난달 말 총회를 통해 HDC현대산업개발의 도급계약 해지 안건을 가결했다. 애초 557가구 규모의 ‘강서센트럴아이파크’로의 탈바꿈을 계획했던 이 사업장은 집행부 부재와 공사비 인상에 대한 반발을 원인으로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HDC현산과 조합은 2020년 계약 당시 3.3㎡ 공사비를 629만 원으로 정했으나 지난해 727만 원(15%) 인상에 합의했다. 올해 들어 시공사 측이 758만 원으로 재차 공사비 인상 요구에 나서자 조합원 반발이 커졌다. 시는 5월 코디네이터를 파견하는 등 중재에 힘썼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건설 공사비 안정화 방안'의 3대 프로젝트 (자료제공=국토교통부)

공사비 인상의 주된 원인으로는 코로나 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으로 인한 시멘트, 레미콘 등 자재 가격 상승이 꼽힌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2021년~2023년) 건설자재 가격은 35.6% 상승했다. 레미콘과 시멘트 가격은 각각 34.7%와 54.6% 올랐고 철근(64.6%)과 건축용 판금제품(70.3%) 등 타 자잿값 인상 폭 역시 컸다.

정부는 이달 초 건설 공사비 상승률을 2026년까지 연 2% 내외로 관리하기 위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내놨다. 민간이 중국 등에서 시멘트를 수입하는 경우 애로사항 해소를 지원한다. 건설분야 인력 수급 안정화를 위해 숙련기능인 채용 시 우대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공사비 인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나 단기간에 실효성 있는 결과가 도출되기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자재비를 낮추기 위해 외국 자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골재 등 주요 자재별로 ‘수급 안정화 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했으나 가격 안정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멘트 특성상 장기 보존이나 유통하는 제품이 아니므로 수요물량과 공급처를 사전에 정해두는 게 아니면 외국산 시멘트를 수입해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하긴 어렵다”며 “수급 안정화 협의체의 경우 운영 중 (자재) 수급 조절이나 선 가격책정 등이 발생하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수 있어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묘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공사비 안정화를 장기전으로 보고 시간을 들여 OSC(Off-Site Construction, 탈현장)공법 상용화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OSC공법은 공장에서 건축물 일부를 사전 제작한 후 현장에서 설치하는 기술로 ‘모듈러 주택’이 대표적인 예시다. 공사 기간과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탓에 활용 중인 건설사가 많지 않다.

안용한 한양대학교 에리카 건축학부 교수는 “모듈러 주택 등이 공사비 절감이라는 성과를 달성하려면 공장 대량생산에 의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야 한다”며 “정부 의지에 따라 다양한 제도 개선과 함께 정책적 지원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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