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좀비기업 퇴로 열어야 상생의 길도 열린다

국내 한계기업을 적기에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26일 ‘9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통해 사이렌을 울렸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곳을 말한다. 시장 경쟁에서 밀려 사실상 도태됐지만, 금융 지원 등으로 연명하는 존재다. ‘좀비기업’으로도 불린다.

좀비기업이 자연스럽게 청산되기는커녕 외려 늘어나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감기업 2만8946개(대기업 5474개, 중소기업 2만3472개) 중 한계기업 비중은 16.4%로 1년 전보다 0.9%포인트(p) 상승했다. 금융권 차입금 비중도 부풀고 있다. 2022년 18.5%에서 지난해 26.0%로 7.5%p 올랐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지난 10년간 2회 이상 한계기업은 5651개였다. 2016년 말 2493개에 비해 2배 이상 불어났다.

기업 성패가 정상적으로 갈리는 시장경제 체제라면 좀비기업이 창궐할 까닭이 없다. 어디서 뭐가 고장 나 이런지 더 늦기 전에 엄밀히 점검해야 한다. 한계기업 폐해는 한둘이 아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역기능부터 치명적이다. 정상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 한은에 따르면 업종 내 한계기업 비중이 10%p 상승할 경우 정상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과 총자산 영업이익률은 각각 2.04%p, 0.51%p 하락한다. 총자산 대비 영업 현금흐름 비율도 0.26%p 떨어진다. 평균 차입이자율은 0.11%p 상승했다. 한은은 “금융기관이 해당 업종 전반의 신용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해 리스크 프리미엄에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도 저해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 결과 좀비기업 자산 비중이 10%p 증가할 경우 정상 기업의 고용증가율과 투자율은 각각 0.53%p, 0.18%p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비기업이 한정된 시장수요를 잠식하고 노동과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탓이다. 그 존재만으로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다.

자본시장을 어지럽혀 투자 심리가 움츠러들게 하는 해악도 크다. 보유 주식 처분을 위해 부정적인 내용의 공시를 늦추거나 허위·지연 공시를 일삼는 사례가 많다. 모집 금액 합계가 10억 원 미만 소액공모 상장법인 115개 중 절반이 한계기업으로 드러나 금융감독원이 최근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런 시장을 믿고 위험을 감수할 투자자가 얼마나 되겠나.

금융시스템 부실 전이도 경계할 일이다. 한계기업 신용공여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이 125조3000억 원으로 가장 많다. 상호금융 13조1000억 원, 저축은행 3조9000억 원도 있다. 한계기업 연체율은 2020년 말 2.4%에서 올해 1분기 11.3%로 급등했다. 곳곳에 지뢰가 깔렸다는 뜻이다. 좀비기업 바이러스가 더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강력한 구조조정만큼 확실한 처방은 없다. 한은은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고착화하는 문제를 해결해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더 보태고 뺄 것이 없다. 상생의 길을 열려면 포퓰리즘 대응 유혹은 단호히 뿌리쳐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