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너머] ‘유예’는 필요악이다

입력 2024-09-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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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환유예. 2020년부터 '만기연장'과 한 세트로 익숙하게 들려온 표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중소기업·소상공인이 타겟이었다. 이어 서민금융대출을 받은 개인채무자도 대상이 됐다. 이후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정부는 빚 부담을 여러 차례 미뤄줬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코로나19 등 사회재난, 고금리·고물가 장기화 등 시장 상황 악화로 어려워진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공공부문의 역할이다. 공공성을 지닌 은행권과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 등 민간금융사 역시 저신용·저소득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사들이 대출금 상환 유예 등 채무조정 방안을 발표하는 이유다.

주의해야 할 점은 유예가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 빚을 갚지 않은 차주의 상환 부담은 누적돼 그 규모가 커진다.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소액생계비대출,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의 연체율과 대위변제율이 이를 방증한다.

금융공공기관의 부실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 등 9개 공공기관의 지난해 부채 총액은 211조4784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2% 늘어났다.

민간금융사의 경우, 수익성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취약계층 지원이 위축될 수 있다. 최근 서금원이 햇살론15의 상환유예 실행률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서면서 은행권에 협조를 요청하자 “내년에 시장 상황을 보고 참여하겠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은행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환유예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근본적인 해답이 아님을 확실히 해야 한다. ‘버티면 정부가 봐준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는 모양새가 돼 취약차주의 재기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약차주의 상환능력이 떨어지면 금융사가 대출 문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상환유예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기간 추가로 보증부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하게 하는 등의 장치가 필요하다.

정책금융 분야를 취재하면서 만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금융의 확대는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부실을 뒤로 미루는 상환유예ㆍ만기연장은 없는 쪽이 바람직한 ‘필요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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