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왜곡된 ‘서구화된 식습관’

입력 2024-07-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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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이 있는 안산시 원곡동은 국경없는 마을이라 하여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거리도 한자, 러시아문자, 아랍문자 등 외국말 간판이 더 많고 병원 환자도 80%가 외국인이다. 자연스레 그네들의 언어를 배우게 되었고, 음식에도 적응이 됐다.

한데, 보기에 먹음직스러워 사기는 하지만 번번이 실망하는 게 있으니 바로 러시아 빵이다.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왜 이리 빵을 맛없게 만드나 의문을 갖고 있다가 최근 들어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주식이냐 간식이냐의 차이. 우리도 밥을 달지 않게 지어 먹지 않던가. 동남아 지역에서 국수를 슴슴하게 만들지 달게 만들던가. 같은 이유로 서구에서는 주식인 빵을 달지 않게, 가능하면 담백하게 만들어 먹는 것이고, 우리 기준으로 보면 맛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빵을 사러가지 않지만 출근하면서 보면 러시아 빵집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최근 들어 빵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 모양도 너무 이쁘고 맛도 기가 막힌다. 분위기 좋은 카페는 또 얼마나 많던가. 빵지순례 빵맛집 빵케팅 등 빵에 대한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통계에 의하면 쌀보다 밀가루 소비가 더 많다고 한다. 떡과 부침이 대표적 간식인 우리네 식생활에 이제 빵은 간식이 아니라 주식의 자리를 넘보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성인병이라 했고, 지금은 생활습관병 혹은 대사증후군이라 부르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 비만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고 있다. 흔히 서구화된 식습관이 그 원인이라고 말해왔는데, 올바른 표현은 단순히 ‘서구화된 식습관’이 아니라 ‘왜곡되고 잘못된 서구화된 식습관’이라 해야 하겠다. 간식으로 먹어야 할 달콤한 빵을 주식처럼 먹는 습관이 그 예다.

맛있는 고칼로리 간식이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세종대왕보다 더 잘 먹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 비만과 소갈증(당뇨병)이 있던 세종대왕. 하여 매달 한 번씩 등산을 하는 동창 모임에서 식사 후 늘 가던 카페에 더 이상 가지 말자고 의사로서 주장해 동창들도 그 이유를 수긍하고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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