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돌아온 홍명보號…위기의 한국 축구 구할까

입력 2024-07-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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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홍명보 울산 HD감독. 지난 2023년 11월 프로축구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울산시 동구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이후 임시 감독 체제를 거친 한국 축구대표팀이 홍명보(55) 울산 HD FC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홍 감독은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이후 10년 만에 대표팀 감독직에 복귀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KFA) 기술본부 총괄이사는 8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축협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는 새로운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감독님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기간은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는 아시안컵까지"라고 했다. 이로써 홍 감독은 9월 5일 홈에서 치러지는 팔레스타인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을 시작으로 2027년 1월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잡는다.

이 이사는 "먼저 시즌 중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려준 울산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K리그와 울산 팬들에게는 소속팀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모셔 클럽을 떠나게 해 죄송한 마음이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클린스만 감독이 물러난 이후 약 5개월 동안 감독 선임을 위해 고생하신 전력강화위원회 정해성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 이사는 홍 감독의 선임 배경에 대해 "5일 홍명보 감독과 밤 11시에 자택에서 만났다. 한국 축구와 연속성을 위해 헌신해달라는 부탁을 몇 차례 했다"고 말했다. 이에 그간 거절 의사를 보인 홍 감독이 마음을 돌려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것으로 보인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회의실에서 축구협회가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내정한 것과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써 홍 감독은 2014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대표팀에서 물러난 지 10년 만에 다시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현재 맡고 있는 울산 HD 감독 사임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

앞서 축협은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홍명보 울산 감독이 내정됐다"고 했다.

"원팀 정신 만들 수 있어"…축협이 홍명보를 선택한 이유

축협은 홍 감독의 선임 배경으로 8개 항목을 들었다. 이 이사가 언급한 항목은 전술적 측면, 원팀을 만드는 리더십, 연령별 대표팀과 연속성, 감독으로서 성과, 현재 촉박한 대표팀 일정, 대표팀 지도 경험,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의 부족,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다.

이 이사는 "홍명보 감독은 상대 뒷공간을 효율적으로 공략한다. 또 상대 위험지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며 홍 감독이 울산에서 보여준 전략이 대표팀에서도 통할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표팀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기회 창출, 빌드업, 압박 강도 모두 (홍 감독의 팀이) 1위였다. 활동량은 10위였으나, 효과적으로 경기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축협은 홍 감독의 과거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 지휘 경험이 '원팀 정신'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로 적용한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홍 감독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을 이끌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2년 8월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2:0으로 승리 후 홍명보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최근 울산에서 K리그1 2연패 등을 이끈 홍 감독의 성과가 외국 지도자와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한 경험도 한국 축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평가했다.

축협은 홍 감독이 외국 지도자보다 한국 선수를 파악할 시간이 충분하다고도 평가했다. 이 이사는 "9월부터 2026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이 시작하는 시점에 그들의 철학을 입히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봤다"며 "이전에 불거진 (클린스만 전 감독의) 재택근무 논란이 재현될 위험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6개월간 새 감독 선임 실패…돌고 돌아 홍명보로

앞서 축협은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한 후 6개월 동안 새 감독 찾기에 나섰다. 축구협회는 정해성 위원장을 필두로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후임 감독 선임에 실패했다. 당시 1순위 후보였던 제시 마치 감독과 이라크의 헤수스 카사스 감독과의 협상은 불발됐다.

축협은 애초 U-23 팀을 맡고 있던 황선홍 감독을 임시 감독으로 선임, 월드컵 2차 예선 태국과 2연전을 1승 1무로 마무리하며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새 감독 선임에 어려움을 겪으며 6월에도 임시 감독 체제를 이어갔다. 축협은 6월 A매치 기간 김도훈 감독을 임시로 선임해 월드컵 예선을 치렀다. 다행히 한국은 임시 감독 체제에서 싱가포르와 중국을 상대로 완승하며 최종 예선으로 향했다.

새 감독 선임이 부진해지자,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결국 전력강화위원회를 이끌던 정 위원장이 사임했고, 이후 이 이사가 감독 선임 작업을 총괄했다. 이 이사는 2일 구스타보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과 다비드 바그너 전 노리치 시티 감독과 협상을 하기 위해 유럽으로 출국, 5일 귀국했다.

하지만 두 감독 모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홍 감독 선임으로 노선을 틀은 KFA는 국내 감독을 선임했다. 이 이사는 "전력강화위원회는 6차까지 논의를 거쳐 1순위와 2순위에서 외국인 감독을 결정해 협상을 해왔다. 결과적으로 이 두 분과 협상은 무산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6월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한국과의 벨기에의 경기가 열린 브라질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전반전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 감독이 무산된 이유로는 국내 체류와 비용 문제가 거론됐다. 이 이사는 "첫 번째 후보는 국내에 거주할 수 없다고 해서 협상을 이어갈 수 없었다. 두 번째 후보는 다른 대표팀을 맡고 있는 감독이었고, 소속 협회에서 반대해 무산됐다"고 밝혔다.

이 이사는 "정 위원장 사퇴 후 총 3명의 후보가 있었다. 홍 감독과 외국인 감독 두 명이다"라며 "외국인 감독 두 명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홍명보 감독을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압축된 3명 중 홍 감독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저는 몇 차례 홍 감독에게 한국 축구의 철학을 설명하며 대표팀을 위해 헌신해 달라 부탁드렸다"고 덧붙였다.

이에 홍 감독은 9월 5일 팔레스타인과의 홈 경기를 시작으로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을 치른다. 현재 한국은 2차 예선을 5승 1무로 통과, 3차 예선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이라크,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 등 중동의 모래 폭풍을 극복해야만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출전을 이룰 수 있다.

"축협과 만날 생각 없다"더니…이틀 만에 '내정' 발표

홍 감독이 10년 만에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홍 감독은 차기 대표팀 감독 부임설에 직접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전 감독이 물러난 직후부터 하마평에 오른 바 있다. 이에 홍 감독은 2월 26일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 당시 "며칠 동안 굉장히 힘들었다. 전혀 아는 것도 없고, 옛날 생각도 나서 굉장히 어려웠던 시간이었다"며 "제일 중요한 건 개인적으로 (대표팀 감독과 관련해) 생각이나 이런 게 없다는 것"이라고 명확한 입장을 냈다.

지난달 30일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 전 인터뷰에서도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홍 감독은 "나보다 더 경험 많고, 경력과 성과가 뛰어난 분들을 데리고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은 항상 같으니 팬들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홍 감독은 축협을 작심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을 뽑을 때까지 전체 과정과 그 이후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보면 축협이 과연 얼마나 학습이 된 상태인지 묻고 싶다"며 "이번 일도 만약 협회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빨리 다른 선택지를 생각했으면 한다"고 했다.

▲6월 16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울산 HD와 FC서울의 경기에서 울산 홍명보 감독이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차기 사령탑 후보 언급이 계속되자, 홍 감독은 5일 수원FC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임생 이사에게 따로 연락받은 게 없다. 만날 생각이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하루 만에 모든 게 바뀌었다.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것이다. 홍 감독은 5일 이 이사를 만났고, 대화를 나눈 끝에 대표팀 감독에 부임하기로 했다. 축협은 "이 이사와 만날 생각이 없다"는 홍 감독의 발언 후 이틀 만인 7일 대표팀 감독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

축협 관계자는 홍 감독의 선임 배경을 두고 "이 이사는 울산과 수원FC의 경기가 끝난 후 홍 감독과 만났다. 삼고초려 형식으로 부탁한 걸로 알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축구를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홍 감독 역시 고심 끝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럴 줄 알았다"…감독 잃은 울산 팬들, 결국 터졌다

모두가 놀랐다. 특히 하루아침에 사령탑을 잃게 된 울산 팬들이 분노했다. 울산 팬들은 홍 감독과 축협을 두고 "이럴 줄 알았다", "현지 면접은 왜 진행했나", "도저히 쉴드 불가", "기대가 안 간다"며 싸늘한 여론을 보였다.

울산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있다. 울산은 2022년 홍 감독의 지휘 아래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울산은 2023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K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울산은 이번 시즌에도 2위(21경기 11승 6무 4패·승점 39)로 1위 김천과 승점 1점 차로 리그 우승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축협은 팬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홍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울산이 K리그 3연패 대업을 앞둔 지금, 시즌 중 감독이 대표팀으로 떠나는 '악재'를 맞은 것이다. 이 이사는 "차후 울산과 협의하면서 구단이 원하는 계획대로 의논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울산을 계속 끌어나가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울산 서포터스, 대한축구협회 앞 트럭 시위. (사진제공=울산 서포터스 처용전사)

울산 팬들의 분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월 클린스만 경질 직후 홍 감독의 대표팀 선임설에 울산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축구회관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처용전사'는 트럭에 설치한 전광판을 통해 '필요할 때만 소방수, 홍명보 감독은 공공재가 아니다' 문구를 띄우며 시위와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축협의 무능력함을 규탄한다. 협회 졸속행정의 책임을 더는 K리그에 전가하지 말라"며 "홍명보 울산 감독을 비롯한 모든 K리그 현역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순간에 감독을 잃게 된 울산 구단 입장에서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울산은 10일과 13일 각각 광주FC, FC서울과 홈 경기가 예정돼 있다. 대표팀 경기까지는 시간이 남은 만큼, 당분간은 홍 감독이 울산을 지도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 언론도 '홍명보 선임' 조명…KFA 규정 꼬집기도

한편, 홍 감독의 한국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두고 일본 언론들도 소식을 전했다. 일본 매체 '사커킹'은 "한국 국가대표팀에 홍명보 감독이 취임한다. 10년 만의 복귀다"라면서 "국가대표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홍명보 감독이 FIFA 월드컵 예선부터 싸우게 됐다"고 전했다.

▲홍명보 울산현대HD 감독이 4월 17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3-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 1차전 울산 HD와 요코하마 F.마리노스의 경기장으로 나오고 있다. (뉴시스)

또 다른 일본 언론 '도쿄스포츠'는 "한국은 아시안컵 4강 탈락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전격 해임했다. 이후 홍명보 감독으로 결착됐다. 목표였던 외국인 지도자 데려오기는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 '닛칸스포츠'는 홍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부임과 관련해 축협 대표팀 운영 규정 제12조를 소개하기도 했다. 운영 규정 제12조 2항에 따르면, 협회는 제1항의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으면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체는 "한국 축구계에는 대표팀 코칭스태프 취임 요청이 있으면 K리그 클럽이 거절할 수 없는 규칙이 있다"라며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축협의 규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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