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치 존재감 커지는 ‘크립토’…“표심잡기에 美는 ‘산업육성’, 韓은 ‘투자이익’”

입력 2024-05-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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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지난해 이어 올해 2500만 달러 ‘가상자산’ 정치 후원금 기부
가상자산 업계 정치 영향력↑…이더 ETFㆍFIT21 하원 통과에 영향
“정치권 대응 달라…美는 산업육성, 韓은 투자이익 집중” 의견 나와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치권에서 가상자산의 존재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11월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일 친 가상자산 행보를 보이며, 바이든 대통령마저 입장을 ‘산업육성’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이에 한국은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정책이 ‘투자이익’에 집중되며 제대로 된 산업육성 정책이 나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치권 내에서 가상자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각)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최근 미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해리스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33%는 가상자산에 대한 태도에 따라 후보자를 지지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조사에서도 77%의 유권자는 이번 대선 후보가 가상자산에 대해 적어도 ‘정보에 입각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미국 가상자산 업계가 모금한 막대한 양의 정치 후원금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9일(현지시각) 리플은 미국의 가상자산 관련 특별정치활동위원회(Super PAC·슈퍼팩) 중 하나인 페어쉐이크(Fairshake)에 2500만 달러에 달하는 정치 후원금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리플의 후원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페어쉐이크를 포함한 가상자산 업계의 후원 규모는 1억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와 관련해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자신의 X(구 트위터)에 “미국이 다른 주요 국가들을 따라잡고, 가상자산에 대한 합리적이고 명확한 규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최근 기부는 금융의 미래인 크립토와 블록체인 기술의 필연적인 진보와 채택에 대한 투자이며, 후진적인 정치인들에게 실패한 정책이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31일까지 미국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에서 개최되는 ‘컨센서스 2024’에 참가한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 역시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을 언급하며 “가상자산이 이번 대선을 결정짓는 주요 안건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캐시 우드 CEO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는 SEC의 이번 승인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그 배경에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고 보고 있다.

이날 더블록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재선 캠프의 실질적인 입장 변화를 확인하기도 했다. 더블록에 따르면 바이든 캠프는 약 2주 전부터 가상자산 업계 리더들과 접촉하며 가상자산 커뮤니티와 가상자산 정책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장경필 쟁글 리서치센터장은 “정치후원금은 미국의 규제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만큼, 이번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및 FIT21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코인베이스, 리플, 점프 크립토, A16Z 등 주요 기업들의 모금을 통해, 업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석문 프레스토리서치 센터장도 후원금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유권자 표심이 더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봤다. 정 센터장은 “후원금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겠지만, 이를 단순히 ‘돈으로 해결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표를 의식한 민주당(바이든 대통령)의 전략변화가 주된 요인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영향력 확대는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FIT21 통과 등이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정 센터장은 미국과 한국의 가상자산 정책 차이점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미국 정치권이 표심을 얻기 위해 펼치는 정책은 ‘산업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한국은 대부분 ‘투자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산업육성과는 무관하다”면서 “이런 차이는 국내 정치권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있었던 폴 라이언(미국 전 하원의장) 공화당 의원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인터뷰만 봐도 미국 의원들의 이해도를 알 수 있다”면서 “국내 입법과정에서도 산업육성이 고려되려면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가상자산 업계의 정치 후원금은 2022년 FTX 파산 사태로 인해 그 위험성을 노출한 바가 있다. 파산 전 FTX는 70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을 기부하며, 샘 뱅크먼 프리드(SBF)는 당시 민주당 후원 규모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파산 이후 해당 자금의 출처가 무단으로 유용된 고객들의 자금임이 밝혀지면서, SBF와 라이언 살라메 FTX 공동 CEO는 최근 재판에서 각각 징역 25년형과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장 센터장은 “FTX 사건 이후 가상자산 업계 후원금의 투명성과 관련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고, 라이언 살라메 사례가 강력한 처벌의 본보기가 됐다”면서 “잠재적인 위험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과거 보다 낮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정 센터장은 역시 “후원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 공백의 문제”라면서 “규제 당국이 FTX를 제대로 감시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고, 최근 통과된 FIT21 같은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됐다면, 방지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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