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우파 소멸, 보수 멸종

입력 2024-05-14 06: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정치경제부 정일환 부장. 조현호 기자 hyunho@

2년 전만 해도 우파에는 좌청룡우백호북현무남주작급 인물이 더러 있었다. 원외에서는 ‘개혁 보수’를 상징하는 유승민 전 의원, ‘보수의 미래’로 불리던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논리와 합리가 좌파의 선동을 눌러주곤 했다. 원내에서는 나경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나름의 무게감으로 당의 중심을 잡는 데 일조했다. 당 바깥에는 ‘조선 제일검’이라 추켜세워지던 한동훈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버티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파의 정권 탈환을 위해 원팀에 몸을 던졌다는 점 말고 또 있다. ‘참을 인(忍)’을 세 번 써가며 도왔던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나락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당에서 내쳐지던 과정은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내부 총질’과 '싸가지'로 요약되는 윤 대통령의 모진 조리돌림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역대급 찌질함이 더해진 대환장 콜라보는 우파의 이불킥으로 길이 남을 사건이다. 유승민 전 의원, 나경원·안철수 의원은 윤핵관도 아닌 주제에 감히 당권에 눈길을 줬다가 아오지행 급행열차를 탔다.

유 전 의원이 지난해 3월 열렸던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하려 하자 국민의힘은 ‘당원 70%, 일반 국민 30%’였던 전당대회 룰을 ‘당원 100%’로 바꿔버렸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높았지만,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 전 의원은 결국 당권 도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전대 룰을 변경할 거면 당원투표 비율을 100%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경원 의원은 ‘연판장 사건’의 피해자다. 나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려 하자 윤 대통령은 돌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그를 임명했다. 시그널을 줬음에도 나 의원이 ‘당직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라고 하자 5일 뒤에는 기후환경대사로 임명했다. 그래도 당 대표 도전의사를 굽히지 않자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2023년 1월 그가 발표한 저출산대책을 대통령실에서 “개인 의견”이라고 일축했고, 이를 신호로 집단구타가 시작됐다. 김재정 의원, 장예찬 당시 청년재단 이사장 등 윤핵관들이 공개적으로 나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며 포문을 열었고, 초선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며 나 의원을 저격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우파의 ‘어른’을 공격한 그들은 이준석 전 대표의 ‘싸가지’를 문제 삼던 분들이다.

안철수 의원도 마찬가지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가 ‘윤안연대’, ‘윤핵관’이라는 표현을 쓰자 대통령실은 정무수석이 공개석상에 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묵언수행을 강요했다. 안 의원은 대통령실의 ‘엄중경고’를 무시하고 당대표 선거를 완주했지만 김기현 전 대표에 밀려 2위에 그쳤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드라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 말고는 딱히 미움 받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 한 전 위원장은 앞으로 윤 대통령의 ‘격노’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정치적 미래가 갈릴 전망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도장깨기식으로 초토화된 우파의 앞날은 걱정스럽다. 이번 총선이 참패였다면 후년 지방선거는 대학살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강원도지사와 경북도지사, 대구시장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 파란 깃발이 나부끼리라는 전망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파는 이대로 멸종의 길을 걸을까. 그간 벌어진 일들을 차분히 되짚어 본다면 숨은 그림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윤 대통령과 대척하다 고초를 겪은 인물은 끝내 살아 돌아와 다음 서사를 쓰고 있다는 일치점이 있다. 우파는 20대 대선에서 0.7%포인트(P) 차이로 겨우 이겼다는 점이 불안하겠지만, 뒤집어 보면 윤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우고도 이긴 선거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에게 조차’ 패한 좌파 후보는 다음 대선에 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음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조용히 있으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아무리 인기가 없다한들 여당 후보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경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말고는 없다. 하나 더, 그가 이끄는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얻은 표는 756만 표로, 국민의힘 1039만 표에 한참 모자란다. 조국혁신당이 얻은 687만표와 개혁신당이 얻은 102만 표는 왜 빼냐고? 그 789만표는 이재명 대표를 거부한다는 주권자들의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