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전 싱가포르 대사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출산율 제고’ 단순 접근 경계해야” [이슈&인물]

입력 2024-04-05 06:00수정 2024-04-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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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주싱가포르대사 지내…“촘촘한 싱가포르 이민 정책 인상 깊어”
“중국·말레이시아·인도계 등 인종 구성 다양, 외국인 정책 엄격하게 적용”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주, 급여·보험 가입 등 의무화…고용주 부담 낮지 않아”
“싱가포르도 작년 합계 출산율 0명대로 감소…저출산, 다양한 요인 복잡하게 얽혀”

“싱가포르 내각의 장관 한 분과 민족적 동질성이 매우 강한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의 인구 위기와 이민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무리 급하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이민정책은 사회통합 측면에서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작년 말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88만1921명(단기체류외국인 제외, 법무부)이다. 전체 인구 대비 3.7%다. 단기체류외국인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은 4.89%로 5%에 육박한다. 초저출산(합계출산율 0.72명)·초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화두로 떠올랐다. 동시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국가 중 싱가포르가 조명을 받고 있다.

▲최훈 전 싱가포르 대사가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싱가포르 현지의 실물경제·정책을 접했던 최훈<사진> 전 싱가포르 대사는 외국인·이민정책에 대해선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1970년대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해 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도 지난해 0.97명을 기록했다. 1997년(1.82명)에 1명대로 떨어진 이후 46년 만에 0명대로 낮아진 것이다. ‘외국인 이민 정책=출산율 제고’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제19대 싱가포르 대사를 지낸 최 전 대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저출산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점에서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민정책이 정착된 싱가포르의 문화와 정책를 경험한 ‘관찰자’로서 이민정책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는 소견을 밝혔다.

“싱가포르, 다인종·다민족 오랜 경험 속 사회통합·조화 중시”

최 전 대사는 싱가포르가 외국인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사회통합과 조화를 중시하는 점을 주목했다. 최 전 대사는 “싱가포르는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인종 구성이 다양한 나라지만 외국인 정책은 엄격하다”며 “촘촘하게 설계된 고용허가 및 비자 제도를 통해 필요한 업종과 유입 가능한 나라들이 미리 지정돼 있고, 채용을 원하는 고용주가 입국부터 고용 관계 종료 후 귀국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서 오랜 경험이 있음에도 그런 환경 속에서 사회통합과 조화를 이루는 게 쉽지 않다는 점도 잘 알고 있기에 계획적이고 세심한 접근 방법을 취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채용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보증금, 보험 의무 가입 등 여러 책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전했다.

최 전 대사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채용하려면 고용주는 채용 전에 보증금 5000싱가포르달러(약 500만 원)를 납부한 뒤 정부의 동의를 얻어 채용할 수 있다”며 “가사도우미가 입국한 뒤 국내 법령이나 고용계약을 위반하지 않도록 고용주에게 일종의 금전 보증을 세운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가사도우미가 법령이나 고용계약을 위반했거나 근로주소지를 이탈한 경우에 보증금은 당연히 몰수되고 다시는 가사도우미를 채용할 수 없다”며 제도의 엄격함도 부연했다.

고용주로서 갖춰야 할 사전 요건들도 짚었다. 최 전 대사는 “고용주는 급여는 물론, 기초생활 식료품, 숙소 등을 제공하고 의료 및 인명 사고 등에 대비한 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채용 전 가사도우미 제도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수강도 의무화돼 있다”며 “도우미 파견국과 싱가포르 내 인력중개업소(에이전트) 간에 급여 수준을 정하므로 파견국 임금수준을 크게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급여 자체는 높지 않지만 여타 부수적인 비용과 각종 관리책임을 감안하면 고용주의 부담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논하고 있는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외국인 제도를 싱가포르 현지인들은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 전 대사는 “자칫 복잡해 보이고 고용주에게 너무 엄격하게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별 고용주(가정)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쓰는 것이니만큼 그에 상응한 부담을 지우는 게 합리적이고 공평하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고 현지인들도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세심한 설계·엄정한 법집행 필요…‘출산율 직결’ 단편적 접근 안 돼”

▲최훈 전 싱가포르 대사가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최 전 대사는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정착할 수 있던 배경으로 정부의 세심한 정책과 엄정한 법 집행을 꼽았다.

최 전 대사는 “정부의 세심한 제도 설계와 운영, 엄정한 법 집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며 “정부는 싱가포르 가계와 기업들이 가사도우미든 저임금 근로자든 부족한 인력을 해외에서 데려올 수 있도록 섬세하고 촘촘하게 고용허가제도를 완비해 놓고 실제 외국인력의 채용부터 입국, 현지 근로, 귀국 등 전 과정에 대해 고용주에게 책임을 지움으로써 불법체류, 정착과 이민 등 잠재적인 사회갈등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한 점이 놀랍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 전 대사는 외국인 이민정책이 출산율 제고로 직결될 것이란 단편적인 접근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시계를 갖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출산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화와 교육 수준, 경제 사회 구조 등 워낙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정책을 도입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식의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풀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일렀다.

특히 “싱가포르 청년층은 원하면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자가 주택을 살 수 있고, 고용과 소득흐름도 안정적이고 은퇴에 대비한 저축도 잘 돼 있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서구적 직장 문화에서 일하기 때문에 삶과 일의 균형도 잡혀 있어 보이지만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 좇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 새겨야”

최 전 대사는 외국인 정책을 논할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당부했다. 한 번 만든 정책은 되돌리기 힘든 만큼 사회적 합의 과정을 충실히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싱가포르는 오랜 기간 각기 다른 인종과 민족, 종교가 뒤섞여 교류하던 곳이라 이민족, 이문화에 대한 관용성이 높고, 정부도 다른 인종과 종교에 대한 관용과 통합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세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최근 들어서는 싱가포르도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매우 심각한 곳이지만 이처럼 이질성에 관용적인 문화는 인구 위기의 해법을 모색할 때 선택지를 넓히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해서는 “문제의 해법을 자국민에게서만 찾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 전 대사는 “우리 사회도 외국인 비중이 5%에 다다르고 다문화국가 진입이 예상되고 있다”며 “많은 저임금 업종의 노동력 부족과 장래 인구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외국인정책과 이민정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싱가포르 내각의 한 장관이 전했던 당부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과 효율만 놓고 문제를 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며 “외국인 정책에 관한 체계적인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면서 다원화된 사회, 다문화적인 사회의 이질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전 사회적 인식 개선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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