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한국 의료의 속도

입력 2024-03-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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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건강 검진 환자의 내시경 검사에서 위암 소견이 관찰됐다. 내시경 소견에서도 뚜렷한 위암이라 조직 검사 의뢰지에 위암 의심이라고 쓰고 응급으로 병리 판독을 보냈다. 병리 판독은 바로 다음 날 나왔고 예상대로 위암이었다. 환자에게 바로 연락하고, 병리 의원에는 대학병원에 보낼 조직 슬라이드를 주문했다. 그와 동시에 환자가 치료받기 편하고 신뢰할 만한 대학병원 진료 협력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접 예약해 주었다. 예약은 바로 잡혔고, 환자는 내시경 검사를 한 지 2주 정도 지나 위암 수술을 받았다. 그 속도에 나도 놀랐다.

한 번은 해외에 계신 분이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문의해 왔다. 조직검사비가 200만 원이 넘고 그마저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속히 한국에 들어오라고 하고, 오자마자 조직 검사를 했다. 검사비는 6만7300원이었다. 결과는 유방암이었고 해 오던 절차대로 대학병원에 의뢰했다. 그분 역시 해외에서 들어온 지 한 달이 되기 전에 수술을 받았다.

이제까지 나는 이 속도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이 속도에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숨어있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진다면 대학병원 어딘가에서는 그 속도를 내려고 죽어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된다. 낮은 의료수가에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수술이 이뤄진다면 병원은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여야 하고 환자 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 속도는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이었다. 기형적 의료시스템 속에서 의료인들을 쥐어짜내 만든 속도다. 이 시스템을 고치지 않는 한, 주당 80에서 100시간 최저시급 가까이 받으며 일하는 전공의들의 삶은 변화가 없을 것이고, 대학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는 계속될 것이다. 필수의료를 하겠다고 수련받은 전공의들이 막상 전문의가 되었을 때 맞닥뜨리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의료 수가는 그들을 비필수 의료 영역으로 발길을 돌리게 할 것이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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