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칼럼] 양육권이 아니라 양육자, 양육의무자

입력 2024-03-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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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칼럼

“그럼 이제 저는 양육권을 가질 수 없는 건가요?”

몇 달 전 면접교섭실에서 이혼 사건의 피고였던 한 아빠가 던진 질문이었어요. 이런 질문을 들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해 지는데요. 어떻게 해야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고 안심하면서 법원 절차를 따라오게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혜 아빠는 아내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했는데, 아내는 이미 지혜를 데리고 집을 나가 따로 방을 얻어 살고 있는 상태였어요. 소송 초기에 ‘양육상황보고서’부터 써 내게 했더니, 피고인 지혜 아빠는 아내가 지혜를 데리고 나간 후 여러 달 이상 지혜를 만나지 못해 보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고, 반면 원고인 지혜 엄마는 그 여러 달 동안 지혜 아빠가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해 주지 않아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누가 먼저 또는 더 잘못했는지를 떠나서 위와 같은 상태는 지혜의 복리(福利), 즉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of child)에 반하는 상황이기에, 우선적으로 임시로라도 양육 상태부터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게 조정(調整, adjustment)해 놓고 이후 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있었기에, 빠른 기일을 잡아 면접교섭실로 부모와 아이 모두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간 만나지 못했던 지혜와 아빠가 함께 시간을 가지도록 하면서 상담위원을 통해 둘 간의 관계를 살펴보게 하는 한편, 지혜와 엄마가 함께 있는 모습도 따로 잘 관찰하여 엄마와 지혜의 관계나 엄마의 양육 태도, 그 밖의 여러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였지요.

그런 연후에 판사인 제가 상담위원 및 부모 양쪽과 잘 의논해서 일단 그 당시를 기준으로 적합한 양육자를 임시로 정하고 그 상대방의 면접교섭 방법 및 양육비 액수·지급 방법 등도 정하고자 하였어요. 나아가 그 내용으로 아예 ‘사전처분’이라는 결정을 해 놓고 그 후 이혼 소송 절차를 진행하면, 아이가 부모의 이혼 소송 와중에 힘들어 지거나 상처받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그 날 지혜를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밝아서 안심을 했고, 오래 떨어져 있던 아빠와 별다른 어색함 없이 반가워하면서 금방 잘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지혜 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사정들, 즉 아이의 청결이나 건강 상태, 정서 상태, 엄마와 친하게 잘 있고 또 잘 떨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아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갖지 않도록 엄마가 노력한 흔적도 보였으며, 지혜 엄마가 양육비를 못 받아서 힘들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지혜에게 필요한 것들은 그럭저럭 잘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등 여러 사정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일단은 그 상태로 지혜 엄마를 임시로 양육자로 하되, 지혜 아빠에게는 가능한 최대한의 면접교섭 시간을 확보해 주고 양육비도 지급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방향으로 상담위원과 상의를 한 터였어요. 이를 기초로 쌍방을 각각 분리 면담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었죠.

그동안 사랑하는 딸을 보지도 못했으니, 이제는 아내와 싸울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지혜를 만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기뻐할까 예상하며, 지혜 아빠에게 지혜 엄마와 사이에서 면접교섭 시간을 조율·확보해 주었는데, 웬걸, 지혜 아빠는 의외의 질문으로 반응했던 겁니다.

지금 임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자신이 ‘양육권자’가 아닌 ‘면접교섭권자’로 되고 앞으로도 ‘양육권자’는 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인 셈이었죠. 그리고 스스로도 양육에 관해 자신이 아내보다는 부족하다는 자각이 드니, 이렇게 이혼을 당하면서 아이에 대한 ‘양육권’도 ‘뺏기게 되나’하는 불안감이 들었고, 그래도 판사와 마주한 기회에 ‘어떻게 하면 나도 양육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또는 ‘양육권 다툼에서 이길 방법이 있을까요’에 관해 조언을 얻어 보자는 마음도 살짝 깔고서 “그럼 나는 이제 양육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인지”를 묻게 된 것이었지요.

“‘양육권’은 지혜 엄마도 갖지 못하고요. 지혜 엄마나 지혜 아빠나 두 분 다 ‘양육의무자’일 뿐이에요.”라는 말로 일단 저는 답하기 시작했어요.

“아니 판사님이 방금 임시 양육권자를 저쪽으로 정한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양육자’라고 했지, ‘양육권자’라고 하지 않았어요. 우리 민법에 이혼 부모는 미성년자녀의 친권자와 ‘양육자’를 정하라고 되어 있지(제837조), ‘양육권자’를 정하라고 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리고 우리 민법 어디에도 ‘양육권’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만 끔벅끔벅하는 지혜 아빠에게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만약 양육에 관해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엄마, 아빠의 것이 아니라 지혜의 권리에요. 즉 지혜가 친엄마, 친아빠에게 이혼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양육해 달라고 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인거죠. 지혜 엄마, 아빠는 그 의무자로서 지혜에 대한 양육을 제공할 의무자고요. 이혼하게 되면 따로 살아야 하니 양육 시간을 나눠서 제공하고, 양육 비용도 분담해서 내야 하는, ‘양육 협력 관계’를 만들 의무가 두 분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있지도 않은 ‘양육권’ 가지고 싸울 생각을 하시기보다는, 아까 의논한 지혜와의 면접교섭 시간, 즉 그게 지혜에 대한 ‘아빠의 양육 시간’이거든요. 그 양육 시간을 꼭 지키고 충분히 갖는 거, 그 시간에 지혜에게 좋은 양육을 제공하는 것, 그래서 지혜가 아빠와 좋은 관계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면 지혜를 아빠에게서 떼려도 그 누구도 뗄 수 없게 될 것이고 아빠가 잃어버릴 권리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거든요. 양육비도 꼬박꼬박 지급하시고요. 지혜 엄마와 지혜 양육에 관한 공동 의무자로서 양육 시간인 면접교섭과 양육 비용 분담인 양육비 지급을 착실히 할 것만 생각하면 좋겠어요.”

(게티이미지뱅크)

지혜 아빠는 끄덕끄덕 하면서도 뭔가 말장난 같기도 한지 다시 한 번 묻더군요.

“그러면 저도 ‘양육자’라고 해 주시면 안 되나요”

“네,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는 우리 민법에 굳이 ‘양육자’를 정하라고 하는 것이 불만이긴 해요. 그냥 ‘양육 시간 분배 스케줄’을 짜라고 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건에서는 실제로 판결이나 조정에서 조항에 ‘원고와 피고는 아래와 같이 사건본인(자녀)에 대한 양육을 공동으로 한다.’라고 쓰고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무슨 요일 몇 시까지는 원고 양육,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무슨 요일 몇 시까지는 피고 양육 같은 식으로 정하기도 해요. 그런데요, 지혜 아빠는 아까 제가 매주 주말에 지혜 면접교섭 하시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을 때, 막상은 일 때문에 매주 주말에 시간이 안 난다,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를 내기도 어렵다, 정기적으로 정하기 힘들다, 그러시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지금 겨우 매달 마지막 주말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낮까지 1박 2일하고, 그 외의 주는 수요일이나 목요일 중 시간 나는 저녁 시간에 두, 세 시간 만나거나, 여건이 도저히 안 되면 영상통화라도 하기로 정했잖아요. 일단은 어렵게 짜낸 이 시간들을 꼭 잘 지키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양육자’냐 ‘면접교섭자’냐 이름을 뭐로 붙이느냐 보다는요.”

“네, 그러면 저도 만약에 지혜를 데려와서 키우고 저쪽에서 주말에 면접교섭을 하면 ‘양육자’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사실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어머니랑 얘기를 했는데 지혜 데려 오기만 하면 어머니가 키워 주신 댔거든요.”

그래도 계속 미련이 남는지 지혜 아빠는 남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건 아빠가 키우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키우는 거죠. 그리고 그게 엄마가 평일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키우는 것보다 지혜에게 나을까요. 지혜는 그걸 원할까요. 좋아할까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지혜는 우선적으로 친엄마, 친아빠로부터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아동권리협약이라고 조약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가입해서 국내 법률과 똑같은 효력이 있는 규정이 있는데 거기에는 아예 아동이 우선적으로 친엄마, 친아빠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에 대해서도 명시되어 있어요. 무엇보다도 아까 상담위원님이 지혜 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오고 있는 것 같다고, 아빠와 면접교섭 단절된 것만 빼면, 그리고 아빠 양육비 지급만 잘 되면 더 할 나위 없겠다고 여러 가지 설명해 주신 것 함께 들었던 걸 잘 생각해 봐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미련이 남아 한 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아까부터 계속 말씀하시기를 지혜 엄마를 칭하실 때마다 ‘저쪽’이라고 하시던데, 지혜 앞에서는 ‘엄마’로 칭해 주시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지혜에게 ‘저쪽 집에 몇 시에 데려다 줄까’라고 하면 안 되고 ‘엄마 집에 몇 시에 데려다 줄까’라고 말씀하셔야 해요. 아이들은 언어나 태도, 분위기 등에도 민감하니까, 엄마와 아빠가 이혼 했어도 서로 적대하지 않고 상대방을 나의 아빠와 엄마로서 존중해 주고 있다고 느껴야, 안심하면서 편하게 오갈 수 있거든요. 엄마 아빠가 이혼했지만 서로 나의 부모로서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 만큼 부모님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시는구나 하고 자존감도 올라가고요. 양육 분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보다 상대방과 양육 협력 관계를 잘 구축하는 것이 아이의 행복과 이익에 아주 크게 기여한답니다.”

임수희 부장판사는…
현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재직 중이며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면접교섭의 중요성 및 바람직한 방법을 안내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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