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 톡!] 깨진 유리창과 ‘소확횡’

입력 2024-03-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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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X는 회사의 부족한 복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내 카페에서 커피 캡슐을 몇 개씩 집어가다가 견과류 등 간식, 필기구 등을 챙겨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대학원 과제를 위한 자료는 회사에서 인쇄하며 모든 전자기기는 회사에서 충전한다. 그는 소확횡 경험을 자랑삼아 SNS에 올리고 친구들은 그를 ‘소확횡 덕후’라며 부추긴다. 그가 올린 ‘회사 자산’ 사진에는 ‘ㅋㅋㅋㅋ’라는 댓글이 넘쳐난다.

회사는 최근 X에 대한 익명 제보를 받아 해고처분을 했고 그는 사소한 행위에 대해 징계처분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비싼 것도 아닌데 쩨쩨하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자가 징계처분을 하는 경우에 구체적으로 어떤 처분을 선택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징계권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다만 징계사유와 징계처분 사이에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균형이 요구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즉 경미한 징계사유에 대해 가혹한 제재를 과하는 것은 징계권 남용으로서 무효다.

징계양정의 적정성을 판단할 때에는 근로자의 직무, 과거 근무태도 및 징계전력, 행위의 반복성 및 계속성, 사업장 내 질서교란의 정도, 파급효과, 재산상 손해 발생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소확횡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업장 질서교란의 정도와 조직 문화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무엇보다 신뢰가 근본적으로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버스요금 800원을 횡령한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례도 있고 작업용 목장갑 100켤레(시가 2만~5만 원 상당)를 반출한 행위에 대한 정직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도 있다.

소확횡으로 얻는 근로자의 이익 또는 회사의 피해가 미미하다 하더라도 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행위를 놀이나 장난처럼 여기는 생각이 퍼진다면, 그 조직에서 도덕성과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깨진 유리창이 방치된 동네는 범죄율이 상승하고, 썩은 사과 하나가 상자 전부를 망칠 수 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옛말을 생각해보면 소확횡에 대한 제재는 바늘 도둑에게도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코 ‘쩨쩨하지’ 않다.

이소라 노무법인 정상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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