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대학교육은 모리배를 위한 것인가

입력 2024-02-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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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중세유럽 대학, 의학 교육서 비롯돼
생명 다루는 의사의 희생·봉사 강조
한국은 의대 증원에 연일 극한 저항
환자 볼모로 과한 지대추구 이해안돼

서양에서 11세기는 여러 가지 변화가 시작된 시기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1세기부터 13세기 말까지 서유럽의 인구가 두 배 증가하였다. 인구의 증가는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상업이 발달하고 원거리 무역이 일어나고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도시의 성장이 불러온 변화는 다양하였다. 지방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증가하면서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중세의 세 계급인 영주와 기사, 신부와 수도사, 농노를 비롯한 농민에 더해 새로운 제4의 계급이 등장한 것이다.

중세의 도시에서 산업과 상업으로 부가 쌓여 갔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종교적 시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특히 이자금지법은 축적한 부를 재투자하는 데 큰 제약이었다. 이자금지법 때문에 중세가 끝날 때까지 자본을 투자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부유한 부르주아가 부를 사용하는 방법은 토지 투자, 호화로운 삶과 예술 투자, 종교 및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 세 가지였다. 중세 말기에는 호화로운 의상과 음식이 유행하고 이를 막기 위해 사치금지법(sumptuary law)까지 제정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예술작품과 건축물 그리고 장엄한 교회 등이 등장하게 된 하나의 배경이기도 하다.

상업과 무역으로 도시에 부가 쌓이면서 병원과 학교 그리고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당시까지의 교육은 주로 신학과 라틴어 교육이었으나 상업과 원거리 무역, 도시의 발달과 함께 특수 분야 특히 법학과 의학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알렉산드리아와 중동의 여러 도시로 전파되었던 그리스, 로마의 고전시대 의학이 서유럽에 역수입된 것은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및 지중해를 정복하면서부터다. 11세기 후반 대학에서 처음 의학 교육이 이루어진 도시는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Salerno)로 알려져 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태리의 볼로냐와 프랑스의 파리에서도 대학이 생겨나고 역시 의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대학 교육을 일으킨 큰 기둥 가운데 하나가 의학이었지만 원시적인 형태의 의학은 선사시대에도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학을 처음 과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사람은 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종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치료법을 거부하고 환자를 관찰하고 상태를 기술하는 것을 치료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질병이 신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온다고 본 것도 그였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해부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에 의학 발달에 장애가 되었으며 그에 따른 오해와 몰이해도 많았다. 의과대학에서 졸업식에 함께 읽는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의사들의 희생, 봉사, 장인 정신을 담고 있다.

의과대학 학생 수 증원 문제로 시끄럽다. 학생 증원에 대하여 이토록 저항하는 집단이 있었던가 싶게 심상치 않다.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같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환영하는 것 같은데 이 나라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속해 있다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경우에는 종사자 수를 증가시키고자 할 때마다 저항이 상상을 초월한다. 의료의 질이 저하된다는 등 여러 핑계를 대지만 본인들의 지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저항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학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의학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는 자각은 없는 것일까?

신학, 의학,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4~5년의 인문학 교육을 먼저 받아야 하는 과정은 이미 서양의 중세에 설립되었다. 직업을 배우기 전에 참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현재의 대학교육 또한 마땅히 그런 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교육은 점점 기술자만을 양산하고 지대 추구를 합리화하는 모리배 교육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지대를 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생명을 앞에 두고 일어나는 지나친 지대 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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