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칼럼] 자녀에게 이혼에 관해 말하기

입력 2024-0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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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 부장판사 칼럼

# 5살 수민이 이야기

수민이 엄마와 아빠는 이혼 재판에서 서로 상대방 잘못으로 혼인이 파탄되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수민이의 양육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다투었지만, 그 심리를 위해서 법원에 수민이를 데려 오라고 하자, 그것만큼은 둘이 일치해서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아이가 상처를 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죠. 수민이는 아직 어리고 엄마아빠의 이혼에 대해 모르니 그 상태로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어요.

‘이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양육자 평가를 위해 필요한 한도에서만 조심스레 아이를 만나 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겨우 부모를 달래어 수민이를 법원 아동상담실로 데려오게 하고는 아동상담위원과 함께 만나 보았어요. 그런데 막상 수민이는 저를 만나자 마자 대뜸 그러더군요. “우리 엄마아빠, 이혼하는 거죠?”

제가 놀라서 “이혼이 뭔지 알고 묻는 거에요?”라고 묻자, 수민이는 “헤어지는 거”라고 대답했어요. “엄마아빠는 수민이가 아직 모른다고 하던데”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더니, 오히려 수민이는 “우리 엄마아빠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아는 거 모르니까요.”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왜냐는 물음에 “엄마아빠가 슬퍼할 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아동상담위원은 그냥 말문이 막혀버렸죠. 다섯 살짜리 아이 입에서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도 했지만,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깊게 부모를 사랑하는 이 작은 아이 앞에서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고1 희정이 이야기

희정이 아빠는 엄마를 상대로 외도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데, 희정이 엄마는 그 전에 이미 집을 나간 상태였습니다. 당시 중3이었던 희정이는 자고 있다가 새벽에 방 밖에서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잠이 깼고, 아빠의 “당장 나가!”란 말에 엄마가 아무 대꾸도 없이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가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몇 달이 지나 희정이가 고1 진학을 하게 되었지만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사이에 아빠는 가끔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희정이를 앉혀 놓고 ‘늬 엄마는 바람이 나서 자식도 버리고 집을 나간 나쁜 여자’라는 비난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 후 희정이 아빠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게 된 희정이 엄마도 혼인 생활 중 부당한 대우 등을 이유로 반소로 이혼과 위자료 청구를 했고 재산분할청구도 했습니다. 나머지 짐을 싸서 완전히 이사를 하기 위해 집에 들렀던 어느 날 희정이 엄마는 희정이에게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한다며, 결혼하고 희정이 아빠로부터 당했던 모욕적인 일들과 무시당했던 일들을 희정이를 붙잡고 늘어놓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혼 소송에서 희정이의 아빠와 엄마는 서로 자신이 희정이의 친권자 및 양육자가 되겠다고 다투었는데, 그 심리와 관련하여 희정이를 면담한 상담위원은 희정이가 상당히 심각한 우울, 무기력, 스트레스 등의 상태를 보인다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고했습니다.

# 초5 준한이 이야기

준한이 아빠는 이혼한지 7개월쯤 되어갈 무렵 준한이 양육자인 그 엄마가 면접교섭을 시켜주지 않는다며 면접교섭 청구를 했습니다. 준한이 엄마는 곧바로 장문의 답변서를 제출했는데, ‘면접교섭을 시켜주지 않으려 한 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준한이 아빠가 이혼 후 연락해 온 적이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양육비도 한 번도 지급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준한이가 아빠를 만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면접교섭을 시켜 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동상담위원이 만나 본 준한이는 엄마 말 대로 아빠를 만나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있던 것은 맞았습니다. 아동상담위원은 준한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빠에게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이혼하고 연락을 하지 않는 아빠에게 화가 나서 지금은 준한이가 “그런 아빠는 필요 없어요.”라고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아동상담위원이 준한이와 몇 회기 상담을 이어가다 보니, 준한이가 그와는 좀 다른 심경을 털어 놓았습니다.

초4 겨울쯤에 아빠가 집에 안 들어왔는데, 엄마는 아빠가 일 때문에 집에 못 오신다고 해서, 준한이는 그런 줄로 알았답니다. 그런데 초5 올라가 봄에 학부모참관수업에 아빠가 학교에 못 오시게 된 일로 엄마로부터 몇 달 전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준한이는 ‘자기 모르게 엄마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배신감이 들고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아빠를 미워하며 아빠에게 화를 다 쏟아내고 있었지만, 실상은 엄마아빠 모두에게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던 거지요. 하지만 함께 살고 키워주고 계신 엄마에게는 화를 낼 수 없으니 결국 아빠만 그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요.

자,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특히 자신의 신분이나 거취에 영향을 받을 중요한 변화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 정확히 알 권리, 제대로 그에 대한 정보를 부모 기타 보호자로부터 제공받을 권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수민이의 부모는 수민이에게 이혼을 모르게 하여 상처주지 않고 보호하겠다고 하지만, 이혼을 자녀에게 상처로 보는 관점 자체가 상처가 될 수 있고, 부모가 스스로 이혼을 상처로 생각하면서 자녀에게 이를 숨기니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자녀는 이중의 괴로움을 져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말이죠. 분위기로, 직관적으로, 특히 어린 아이들일수록 오히려 더 환경과 사람들, 상황에 민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눈높이에 맞게 정확히 잘 알려주지 않으면 어린 아이들일수록 ‘막연한 불안감’이 유발되는 등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희정이의 부모는 대체 왜 희정이에게 서로에 대한 험담과 비난, 특히 자녀가 알아서는 안 될 부모의 치부로서 부부간의 내밀한 문제까지 말한 것일까요. 단언컨대, 희정이의 예에서 부의 행동이나 모의 언행은 모두 희정이에 대한 정서 학대에 해당합니다. 미성년자녀는 부모의 갈등과 분쟁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폭력적이거나 지속적 또는 반복적인 경우는 그 부모에게 ‘자녀에 대해 그러한 상황의 노출’에 관한 고의가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정서 학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희정이 부와 모처럼 ‘고의’로 희정이에게 상대부모의 외도 사실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나 상대부모의 부부관계 상의 내밀한 잘못에 대한 상세한 지적 등을 하는 것은 미성년자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주고 장기적으로 회복이 어려운 성격(character) 형성에까지 영향을 줄 위험이 있는 아주 해로운 행위입니다. 즉 미성년자녀에게 그가 알아야 할 것은 눈높이에 맞게 알려주고 노출시키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호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준한이 부모의 경우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준한이의 말처럼 이혼한 것이 준한이에 대한 배신이었고 잘못한 것일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준한이와 같이 이혼을 부모의 배신으로 느끼는 경우들을 봅니다. 특히 초등 시기 아이들의 경우 발달 과정 상의 여러 이유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확실히 이혼 전에 미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아이에게 부모가 이혼 결정을 이야기해 주고 아이로 하여금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리고 자녀에게 이혼에 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공통적인 것들을 뽑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이 확실해 지면 미성년자녀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양 부모가 함께 말하는 것이 좋다. 편안한 장소와 시간을 택할 필요가 있다. 자녀에게 말할 것을 미리 부모가 함께 준비한 다음 차분히 말하는 것이 좋다. 자녀의 연령과 발달 수준에 따른 이해도 등을 고려하여 눈높이에 맞게 대화해야 한다. 자녀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고, 답할 수 있는 것이든 할 수 없는 것이든 부모는 최선을 다해 그 질문들에 응해 주는 것이 자녀에게 이롭다. 무엇보다도 이혼 결정에 대해 자녀가 보이는 감정적 반응들에 대해 표현할 수 있게 하고 받아 주도록 하라. 부모 서로에 대한 비난이나 험담은 자제하고(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으나) 특히 자녀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아님을 명시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혼하더라도 여전히(당연히)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으로 돌볼 것이라고 말해 주고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혼 후 변화에 대해, 특히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고, 다른 쪽 부모와는 언제 어떻게 만나고 함께 지내며 연락을 취하고 살게 될지 등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고 그에 대한 의견도 충분히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자, 이상의 것들을 잘 이야기 나누어야 이혼 후에도 자녀들과 비동거부모가 원만하게 면접교섭을 해 나갈 수 있겠지요. 자녀를 위한 면접교섭의 이행의 전제는 ‘제 때 이혼에 대해 제대로 자녀에게 말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준한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미리 이혼 얘기를 한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를 제가 한번 써 보았습니다. 혹시 참고가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엄마 : 엄마와 아빠는 이제는 부부로 살지 않기로 했어. 서로 그것을 원하게 되었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기로 한 거야. 그래서 ‘이혼’이란 걸 하게 될 거고 앞으로 따로 살게 될 거야.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엄마아빠 사이의 일이고, 준한이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엄마가 준한이를 사랑하고 아빠가 준한이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이 똑같아. 이것만큼은 엄마아빠가 준한이에게 꼭 약속할거야.
아빠 : ◯월 ◯일에 아빠는 이사를 해서 ◯◯에 있는 새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거기에도 준한이 방을 마련하려고 해. 준한이가 학교를 그대로 다녀야 하니 이 집에서 엄마와 평소대로 지내며 평일에 학교를 다니다가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낮에 아빠 집에 가서 아빠와 하룻밤이나 이틀 밤을 지내고 오면 좋을 것 같아. 아빠가 준한이를 데리러 올게.
아빠 집에 새로 마련할 준한이 방에 새 책상과 침대도 놓고 준한이가 필요한 것, 원하는 것들을 준비해 주고 싶어. 언제 아빠와 함께 준한이 마음에 드는 물건 고르러 가면 좋겠어.
엄마 : 물론 평일에도 언제든 아빠와 통화나 문자를 할 수 있고 또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아빠를 만날 수 있도록 엄마아빠가 준한이를 위해 노력하려고 하니, 아빠가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간다고 해도 준한이가 슬퍼할 필요는 전혀 없어. 아까 엄마아빠가 준한이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계속 그럴 거라고 약속한 것 기억하지?
준한이가 원할 때 언제든 아빠를 만날 수 있고 아빠가 말씀하신 것처럼 아빠가 정기적으로 준한이를 위해 함께 지낼 시간을 내실 거라고 엄마아빠가 다시 한 번 약속할게.
아빠 : 준한이가 엄마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나 아니면 무엇이든 괜찮으니까 혹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 볼래?

▲임수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 부장판사
임수희 부장판사는…
현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에 재직 중이며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면접교섭의 중요성 및 바람직한 방법을 안내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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