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황금빛 햇살이 빛나는 누리에서

입력 2024-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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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순간 안왔다고 낙담하지 말자
혹한과 굶주림 견뎌내는 생명체들
그것은 삶에 충실하란 숭고한 명령

거센 물길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우리 앞 난관을 힘차게 헤쳐나가자

새해 첫 날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다름없건만 그 느낌은 특별하다. 아아, 새해구나! 머리는 맑고, 가슴은 따뜻하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심장이 빨리 뛴다. 새해 첫 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을 받았다면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다. 푸른 댓잎이 휘청이며 댓잎에 얹혔던 눈가루를 공중에 흩뿌린다. 그걸 신호로 눈 속을 휘저으며 풀씨를 찾던 텃새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당신에게 별의 순간이 오지 않았다고 낙담하거나 투덜거리지는 말자. 가장 큰 바다는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멋진 춤도 추지 못했다. 아직은 새해 첫 날 아닌가!

자기 직분에 충실한 이들 아름다워

생명의 숭고한 여정에서 하루하루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은 아름답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올바른 본을 보이고 생업에 열중하라. 교사들은 성심을 다해 가르치고, 빵을 굽는 사람들은 반죽을 빚고 그것을 굽는 일에 정성을 다하자. 노래하는 이들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축구 선수라면 허벅지 근육을 키우고 공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라. 대장장이는 모루 위에 달군 쇠를 올리고 힘껏 두드리고, 청소미화원이라면 거리를 깨끗하게 쓸고, 의사라면 병상에 누운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더 친절하게 대하라.

산 아래 집 짓고 살던 시절, 한겨울이면 주린 산짐승들이 먹잇감을 찾아 인가까지 내려왔다. 새벽에는 너구리나 족제비가 집까지 내려왔다가 돌아가며 눈길에 찍어놓은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길고양이들은 혹한에도 제 몸의 온기를 지켜 살아남고, 알뿌리들은 얼어 죽지 않고 봄마다 새싹을 피워 올린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혹한과 굶주림을 이기고 살아남는 일은 놀라운 일이다. 느닷없는 시련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더라도 당신은 부디 살아 있어라!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내세울 단 하나의 공훈이다.

내가 극제비갈매기를 머릿속에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다. 무게가 125그램밖에 되지 않는 새인데,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그린란드에서 봄여름을 나며 짝짓기를 하고 가을에는 월동지를 찾아 남극으로 향한다. 이들의 평생 이동 거리는 무려 240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벌새는 몸통이 가볍고 작은 새다. 벌새는 머리에서 꽁지까지 길이가 5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벌새는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날갯짓을 1초에 아흔 번이나 한다. 저를 부양하는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 생태계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은 생명의 숭고한 명령이다.

낯설고 이름없는 것에 축복을 빌자

안녕하신가, 어제의 슬픔이여. 안녕하신가, 나의 미래여. 미래는 오늘 안에 숨 쉰다. 200년 전 한 시인은 “마음은 미래에 사는 법/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이라고 노래했다. 어리숙한 이들은 미래가 저 멀리서 오고 있다고, 미래의 행복을 유예하며 오늘의 불행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래는 미지의 형태로 우리 안에 도착해 있는 것을!

새해 첫 아침에 벗들에게 이런 시를 선물로 들려주고 싶다.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장작을 패거나 세상을 돌아다니겠습니다/내일부터는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하이즈, ‘바다를 마주하고 따듯한 봄날에 꽃이 피네’)

새해에는 나를 해한 사람을 해하지 않고, 나를 동정한 사람을 동정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밤은 병실에서, 감옥에서, 외딴 산골에서 외롭게 지내는 사람을 생각하자. 살다보면 불행과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삶의 음지에서 엎드려 신음할 때도 있다.

이것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측면이다. 죽거나 포기하지 말고 버티고 살아내자.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위로의 말과 응원의 말들은 얼마나 힘이 되었던가! 우리는 모든 강줄기 모든 산봉우리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낯선 이들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자. 이름없는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이름을 받은 것들은 의미의 존재로 거듭나고, 낯선 이들에게 빌어준 축복의 말은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작은 진실 몇 개가 생을 빛나게 해

사는 데 거창한 진리 따위는 필요 없다. 어쩌면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잉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은 진실 몇 개만으로도 생은 충만할 수 있다. 진리를 구하겠다고 미치광이처럼 헤매거나 진을 빼지는 말자. 목마름을 해갈하는 데는 바다가 아니라 깨끗한 물 한 잔이면 된다.

먼저 내 발이 자랄 때마다 새 신발을 사주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하자. 당신의 피와 살을 떼어 주신 어머니와 내 신체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신 아버지께 고개를 숙이자. 지난해 싸운 이들은 이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자.

이 순간 묵은해는 망각 속에 묻고, 우리 앞에 와 있는 오늘을 힘차게 헤쳐 나아가자.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얼굴을 마주 보며 “당신이 이 티끌세상에서 행복하길 바랍니다”라고 속삭이자.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살자. 당신과 나는 꽃 피는 따뜻한 봄날에 바다를 바라보며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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