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텅 빈 병원의 복도 끝에 서서

입력 2023-1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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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부러져서 얼마나 아프니? 그런데 여기까지 왜 왔어. 그냥 집에서 쉬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픈 내 발을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선 기어코 내 어깨까지 쓰다듬으신다. 그리곤 당신의 갈비탕 그릇에 있던 고기 한 덩이를 집어 재빠르게 내 밥 위에 얹어 주셨다.

“뼈는 잘 먹어야 제대로 붙는다. 식기 전에 얼른 먹어라. 얼른.”

어머니 말씀을 듣던 중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고,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갈 리 없는 난 그저 국그릇만 빈 숟가락으로 휘휘 젓고 있었다.

얼마 전 유방에 작은 혹이 만져진다던 어머니께선 검사상 청천벽력 같은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 근처 병원 원장님께서 대학병원 유방 외과로 예약을 해 주셨고, 수술 하루 전 같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수술이 어떻게 될지, 도대체 림프절 전이는 되었는지, 수술 병기(病期)는, 고령이신데 마취는 잘 견디실지….’

온갖 걱정들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내 앞에서 큰 수술을 앞둔 당신보다 기껏 발가락뼈 하나에 금이 간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결국 재촉에 못 이겨 내가 고기 한 덩이를 입에 무는 것을 보고서야 어머니께선 빙긋이 웃으신다.

때론 하늘이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해주는 경우가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 또 당연히 생각했기에 지나쳐 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고. 병원 일이 바쁘다고, 아픈 환자가 먼저라며 고향 집에 발걸음이 뜸했던 내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 듯하다.

부디 수술이 잘 되고, 또 힘든 치료 기간도 잘 버텨내시길, 낯선 병원의 텅 비어버린 복도 끝에서 빌고 또 빌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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