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서울의 봄’이 불러온 ‘영화계의 봄’

입력 2023-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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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계는 부진을 거듭했다. 과거 영화계에서 500만 관객은 대단한 숫자가 아니었지만 코로나 이후 국내 영화계에서 500만 관객은 대박의 이정표가 되었다. 업계에서는 젊은 관객들이 영화계를 완전히 떠난 게 확실하다며 OTT 이후 국내 영화계의 어두운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이 과정을 <서울의 봄>은 보란 듯이 깨뜨렸다.

대한민국 역사의 비극적인 단면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작품성이 좋다면 언제든지 관객들은 영화관을 다시 찾는다는 희망을 영화계에 던져줬다. 영화표 가격 상승, OTT의 등장 등으로 영화관의 침체는 현실이 되었다고 지금껏 업계 전문가들은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이며 영화계의 부진을 상당 부분 관객의 외면 탓으로 돌렸다.

영화산업의 침체는 왜 발생했을까?

영화는 콘텐츠산업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장르다. 온라인 게임과 K-POP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작을 수 있어도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감동과 흥미 등 정성적 가치를 선사할 수 있는 장르는 영화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한때 국내 대기업이 앞다퉈 영화산업에 진출한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산업은 역설적으로 감동과 흥미 등 정성적 가치에서 상업적 흥행 등 정량적 성과에 초점을 두면서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영화산업의 불문율과 같은 공식이 몇 가지 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추석 연휴 그리고 설 연휴 등 그야말로 대목이라고 불리는 시즌에 각 배급사는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입한 영화를 전면배치한다.

그리고 해당 영화에는 초특급이라고 불리는 A급 배우들이 출연해야 하고 시나리오 및 감독은 흥행불패를 자랑하는 이들이 맡아야 한다. 장르는 액션, 멜로, 코믹, 휴머니즘 중 하나를 취사선택하거나 각각의 장르를 뒤섞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느냐보다 어떻게 해야 흥행할 수 있는지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 결과, 관객들은 피로감만 느꼈다. 유사한 내용의 영화가 중복해서 등장했고 이른바 텐트폴(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대규모 영화)은 완성도 높은 스토리 대신 현란한 장면만 제공하며 관객을 현혹해 왔다. 그 사이 관객들은 영화관을 조금씩 떠나기 시작했다. 표면은 코로나, 영화표 가격, OTT지만 실제로는 볼만한 영화가 없었다.

영화는 산업 이전에 문화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1990년대 다수의 대기업과 통신사가 영화산업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10년도 못 되어 영화계를 떠났다. 영화는 쉽게 말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산업적 가치로 바라본 기업들은 그 사이 자리를 비웠고 문화적 가치로 바라본 기업가 또는 도전적인 사업가들이 영화계를 메워왔다. 지금은 또 한번의 과도기다.

1990년대 100만 관객을 넘어 2000년대 1000만 관객으로 영화계의 산업적 규모가 커지며 한때 국내 배급사 및 흥행 감독들은 제작 단계부터 1500만 또는 2000만 관객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관객의 눈높이는 예전보다 한층 더 엄격해졌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산업적 가치가 아닌 문화적 가치를 향유하는데 있다.

참고로, 영화 <서울의 봄>을 주목한 이들은 업계에서도 많지 않았다. 내용 자체가 흥행하기에 적합한 장르가 아니고 젊은 관객에게 낯설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영화는 흥행 비수기인 11월 22일에 개봉했다. 감독과 출연 배우들은 개봉 전, 진심을 다해 만들었지만 해당 영화가 얼마나 관객들에게 통할지는 미지수라고 답변했다.

대형 배급사를 통한 영화관 점유율 장악으로 초반 흥행몰이하는 공식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서울의 봄>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완성도 하나만으로 젊은 관객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시간이 갈수록 관객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고 현재까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의 봄>은 암울했던 <영화계의 봄>을 불렀다.

산업적 가치로만 영화를 바라본 영화업계를 관객은 외면해 왔다. 그러나 관객을 위해 재미와 흥미, 감동 등 문화적 가치를 위해 고민하는 감독과 배우를 위해 대중은 지금도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영화관을 찾는다. 제아무리 OTT 전성시대라고 해도 영화 관람을 위해 영화관을 찾는 문화적 가치보다 위에 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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