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시선] 정쟁수단 된 방통委 임계점 왔다

입력 2023-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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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안배 따른 구성…파행 일삼아

국회 다수당 횡포 속에 정책 실종

위원회 형태 기구 존재의미 잃어

야당의 탄핵 공세 때문에 사임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임으로 김홍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지명되었다. 언론매체들의 예상과 달리 법조계 인사가 추천된 것도 그렇지만, 지명된 후보자의 귀감이 될 만한 인생역정이 세간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탄핵 직전에 전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사임한 것을 놓고 강한 비난을 쏟아내고, 후임 방송통신위원장도 탄핵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야당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도 관심이다.

아니 이제는 위원장 개인의 자격이나 업무와 무관하게 정쟁과 파행이 지속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라는 기구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2008년 방송과 통신을 함께 아우르는 규제기구를 여·야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 형태로 출범시킨 이유는 논의와 합의를 통해 방송정책의 민주성과 합리성을 담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정부 주도의 권위적 방송정책을 정치적 안배와 균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취지였다.

전문성과 책임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형태의 규제기구를 채택한 이유는 독임제 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권 여당의 정책적 독선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출범 이후 지금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독임제 부처를 능가하는 일방적 정책 결정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다수의 폭력이 지배하는 야만적 정치문화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같은 위원회 제도는 다수 여당의 독주를 다수결이라는 형식적 절차로 포장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천박한 정치문화에서 위원회 제도는 정치적 갈등과 정쟁이 지배하게 마련이다.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정치와 정책이 혼재되어 오락가락하는 어찌 보면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가 될 수 있다. 합리적이고 민주적 방송정책을 명분으로 채택한 정치적 안배 구조가 도리어 방송정책의 합리성과 민주성을 더 실종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그나마 집권 여당이 국회 의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면, 그런 갈등과 독선이 위원회 내부의 절차적 갈등으로 내재화되어 그 폐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극단적 정치 갈등이 지속되면 위원회 조직은 정상적인 기능은 고사하고, 제대로 구성조차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당이 추천한 2인 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정치적 안배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행의 한 단면인 것이다.

한마디로 디지털 융합에 대응하기 위해 방송과 통신을 함께 합리적으로 규제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취지는 퇴색하고, 또 하나의 정쟁 공간이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정치 논리가 정책을 지배해버린 것이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 중에 방송·통신 전문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고, 행정부처 성격을 고려해 여당 위원 중 1인을 방송통신위원회 내부에서 승진·임명해왔던 관행도 사실상 사라졌다. 전문성은 약화되고 정치 논리가 점점 커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통신 규제기구를 위원회 형태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외형은 위원회 형태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독임제와 별 차이 없는 정책 결정이 일상화되고, 정치적 독립은커녕 정치적 갈등으로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위원회 형태의 방송통신 규제기구는 이제 그 실효성이 다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제 대상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문화체육관광부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들과 방송서비스를 분류하는 아날로그식 규제체제가 얼마가 갈지, 방송 매체 중에 유료 방송만 별도로 구분해 규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솔직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 진흥과 규제를 구분해 기구를 분리한다는 낡은 형식논리도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지금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 기구 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성, 아니 위선적 구조를 알고도 위원회 형태를 유지해 온 배경에는 방송과 방송규제기구를 정치적 이해득실로 접근하는 선입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인식이 방송·통신 영역이 정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근본 원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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