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영의 금융TMI]은행 경쟁자 더 늘리라는 정부 "잘 되고 있나요?"

입력 2023-11-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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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뉴스를 접해 보면 궁금증이 생기기 일쑤죠. 당장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에도 바빠 맥락과 배경까지 꼼꼼히 짚어주는 뉴스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과도해도 정보가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금융TMI]에서는 금융 정책이나 용어, 돈의 흐름, 히스토리 등을 쉽게 설명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따분하고 어렵기만 한 금융 기사를 친절한 ‘TMI(Too Much Information)’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7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를 거쳐 마련한 개선방안에 대해 은행지주회장들과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은행권 경쟁 촉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올해 2월부터 가동했던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 목적과 결과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7월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서 TF 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TF 작업의 핵심은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경쟁 도입”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 은행과 주도 아래 금융권, 민간전문가,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한 TF 회의는 4개월간 총 15차례 진행됐습니다. 회의는 거의 매주 열렸고, 금융위는 회의 직후 국민에 논의 사항 등을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하기로 했다’는 결과만 발표한 게 아니라 논의 테이블에 오른 다양한 주장, 반론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식으로 발표하면서 특히 금융당국이 핵심으로 내세운 ‘은행권 경쟁 촉진’과 관련해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금융당국이 TF 회의를 거의 매주 진행한 배경에는 ‘5대 은행 중심의 과점체제’가 있습니다. 현재 국내 은행 산업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시장을 지배하는 과점적 시장구조가 고착화돼 있습니다.

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 전체의 원화예수금에서 5대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3%에 달합니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요구불 예금’과 돈을 은행에 맡긴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찾을 수 있는 ‘저축성 예금’ 등을 국민 10명 중 7명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에 넣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시스템”이라며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은행권이 과점적 상태에 있어 과도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2월 국무회의 등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에 “금융·통신 분야의 독과점 폐해를 줄이고 실효적인 경쟁 시스템을 조성할 수 있는 공정시장 정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 TF를 구성하고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한 구조개선을 비롯해 성과보수체계 개선, 손실흡수능력 제고 등 6개 과제에 대한 개선안 마련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금융당국은 올해 7월, 4개월간의 TF 운영 결과로 은행권의 과점체제를 완화하기 위한 기존 금융회사의 은행 전환 허용, 신규은행 추가 인가, 특화전문은행 확산, 비은행권 지급결제 등을 내놨습니다.

이중 비교적 뚜렷하게 제시된 경쟁촉진안은 ‘지방은행의 시중은행화’였습니다. 첫 타자로는 DGB대구은행을 내세웠습니다. 금융당국은 30여 년 만에 지역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 출현하는 것이라며 “수도권과 지방은행이 없는 충청, 강원 등에서 여·수신 경쟁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밖에 당국은 비수도권 저축은행 또는 구조조정 목적의 경우 영업구역 제한 없이 4개사까지 인수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M&A) 규제를 완화해 저축은행 대형화를 가능하게 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한국은행ㆍ한국금융연구원 “은행권 경쟁확대, 안정성·공정성 해칠 수 있다는 점 주의해야”

윤 대통령의 지시, 금융당국의 발표만 보면 경쟁 확대는 국내 은행권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인 것만 같습니다. 은행권 경쟁 확대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경쟁 확대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요.

한국금융연구원은 2016년 ‘국내 은행산업의 시장경쟁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은행산업 내 경쟁이 과도해지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보고서는 은행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소액의 단기예금을 받아 예금보다 만기가 긴 대출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예금자는 차주의 상환능력과 은행의 심사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은행들이 혁신을 꾀하게 되면 시장에서 약간의 불확실성만 발생해도 금융사의 안정성이 쉽게 흔들릴 거라는 얘기입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경쟁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를 위한 제언’ 보고서에서 “금융사 간 경쟁 촉진은 금융시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업무나 행위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적절히 규제,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은행보다 소유, 지배구조 규제가 느슨한 비은행이나 비금융회사에 은행 업무를 허용해주는 등 업무영역 규제를 완화하면 규제차익을 이용해 금융시장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은 역시 경쟁도 상승에 따른 건전성, 금융안정성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은은 ‘은행산업의 경쟁도 현황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금융기관 간 경쟁이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과 혁신을 수반하지 않고 특정 부문의 시장점유율 확대나 가격 인하 위주로 전개될 경우, 경영 건전성과 수익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TF 회의 결과 발표 4개월 지났지만…경쟁 촉진안 속도 더디고 효율성도 ‘의문’

▲DGB대구은행은 7월 6일 오전 대구은행 제1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올해 3월 초 금융당국의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TF’에서 은행권 경쟁촉진 방안의 일환으로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인가’가 제시됨에 따라 즉시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시 황병우 은행장은 “시중은행으로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전환 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혀 금융권에서는 연내 시중은행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사진제공=DGB대구은행)

은행권 TF 논의 결과가 발표된 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은행권 경쟁촉진안의 실천 속도는 더딥니다. 과연 지방은행의 시중은행화, 저축은행의 지방은행화, 저축은행 M&A 활성화 등 TF 논의 최종안이 은행권의 건전한 경쟁 도입으로 이어질지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시각도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표한 정무위원회 국감 이슈 분석 자료에서 “현재 은행권 경쟁촉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금융위 내부 TF 차원에서의 아이디어 논의 단계에서 제시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대부분의 방안이 실제 추진 여부나 추진 시기, 구체적인 내용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향후 방안별 실효성과 부작용 등을 고려해 정책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국감이 끝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회입법조사처의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화를 위해 가동 중인 DGB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TF’팀은 여전히 “시중은행 전환 이후의 사업계획을 정교화하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9월 말’까지 인가 신청서를 당국에 제출하는 것이 애초 계획이었지만, 불법계좌개설 적발 등 내부통제 이슈로 제동이 걸리면서 지금은 “일정 예상이 어렵다”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화가 효과적인 경쟁촉진안이 맞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구은행과 시중은행 간 규모 차이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6월 기준 대구은행의 총자산은 75조3172억 원으로, 지방은행 6개사(경남·광주·대구·부산·전북·제주은행) 중에서는 부산은행(91조633억 원) 다음으로 규모가 크지만,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습니다. 대구은행의 총자산은 시중은행 중 가장 자산 규모가 작은 우리은행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은 대구은행 시중은행화가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의 경쟁상대로 부상하기 쉽지 않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의 영업범위를 확장해 인터넷은행이 모든 부문에서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저축은행의 M&A도 업권 전반의 건전성 악화로 진행 상황이 불투명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적기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저축은행업권이 적자가 난 현 상황에서 M&A가 활성화하면 부실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박선지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 역시 “예대마진 축소, 대손상각비 등 증가로 2분기 연속 적자를 보인 저축은행업권은 M&A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저축은행 업권에 축적된 여러 부실 요인을 털어내야 하는 시기”라고 조언했습니다.

은행권 경쟁 촉진안 실천 나설 금융당국…“‘금융소비자 후생 증진’이 본질임을 기억해야”

앞으로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쟁촉진안’의 실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금융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화, 우리금융저축은행의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진행 등이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개별적인 정책 실천에 매몰돼 은행권 경쟁 촉진의 근본적인 논의 배경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은행권 경쟁 촉진의 배경에는 ‘금융소비자 후생’이 있습니다. 금융소비자에게 더 나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본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최종안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 촉진이 가능할지, 실천을 통해 소비자의 금융사에 대한 신뢰도와 편의 상승으로 이어질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경쟁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금융사의 내부통제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기본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개별적인 정책방안 모색 이전에 근본적으로 은행산업에서 과점체제로 인한 경제력 집중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런 경제력 집중이 시장경쟁이나 금융소비자 후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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