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명의와 돌팔이

입력 2023-11-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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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병이라고 어떻게 확신하세요.”

내 말을 듣던 환자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 두 군데를 가서 치료했지만 낫지 않았단다. 이제 식사조차 할 수 없다며 휠체어에 앉아 온 환자를 청진기만 댄 채 진단명을 말해 버렸으니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몸에 난 발진 모양과 환자분의 증세가 쓰쓰가무시병에 딱 들어맞아요. 더구나 지금이 그 병의 유행 시기이기도 하고.”

몸에 가피(진드기에 물려서 생긴 작고 붉은 딱지 모양의 상처)가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자 환자는 놀라며 사타구니 부위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정말 명의네요” 한다. 내 얼굴에도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 만에 돌팔이가 명의가 되었으니 말이다.

전날 오전 진료 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씩씩거리던 남자가 내 앞에서 갑자기 윗옷을 올리며 큰소리를 냈다. “선생님, 대상포진을 모르고 엉뚱한 약만 주시면 어쩌자는 거예요.”

그랬다. 그동안 요통으로 치료한 환자의 등엔 검붉은 띠 모양의 병변이 뚜렷이 보였다. 분명 마지막으로 진료 볼 때까진 없었던 피부병변, 초보 의사도 진단할 수 있는 대상포진에 의한 수포였다.

한순간에 난 돌팔이 의사가 된 것이다. 이처럼 몇 가지 병은 한 끗 차이로 의사를 명의와 돌팔이로 매정하게 갈라버린다.

질병의 초기에 감기로 오인되는 쓰쓰가무시병, 단순 근육통으로 여겨지는 대상포진, 그리고 장염으로 진단될 수 있는 충수염(맹장염) 등이 그것이다. 환자가 언제 왔느냐, 초기에 질병이 제 모습을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진단을 내릴 수도, 또 오진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돌팔이로 만드는 복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병을 다 열거하고, 증세 변화를 자주 관찰하며, 많은 검사를 해야 하지만 짧은 진료 시간에 따른 문제. 그리고 자칫 잦은 병원 방문을 유도한다는, 또는 과잉 진료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난감할 때도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통받은 환자분께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의사가 끝나는 날까지 항상 조심하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엔.

진료를 마치고 손을 닦으며 바라본 거울 속엔, 명의도 돌팔이도 아닌 아침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낯선 얼굴이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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