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니 예전에 우리 병원에 자주 다녔던 환자였다. 환자의 우측 어깨에는 큰 밤송이 가시에서부터 확대경으로 봐야 보이는 자잘한 가시까지 많은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어깨 밑 흉부에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매직 자국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 병원을 못 온 이유가 유방암을 진단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날이 좋아서 산책을 나섰는데 밤나무 밑을 지나다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가시를 빼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밤송이 가시가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다니 놀랐다. 가시를 빼내고 있을 때 갑자기 환자가 울기 시작했다. “제가 암 진단받고도 안 울고, 항암 치료 때도, 방사선 치료 때도 꾹 참고 안 울었는데 떨어지는 밤송이에 맞으니까 울음이 나오네요.” 치료를 다 마쳤을 때 환자도 울음을 그쳤다. 고생하셨다고 등을 토닥여 드리고 치료실을 나왔다.
나는 몰랐다. 얼마나 환자들이 울음을 참고 있는지, 좋은 날이 올 거라 기다리며 그때까지는 울지 말자고 슬퍼하지 말자고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만 눈물을 삼키고 있는지…. 힘든 치료 가운데 있는 환자들의 마음은 마치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다. 그러다 생각하지 못한 우연마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참았던 감정과 눈물이 폭발하고 만다. 왜 밤송이마저 그것도 오른쪽에 떨어지는지…. 자그마한 말 한마디, 날씨의 변화, 우연한 일들이 나의 환자들에게는 밤송이 가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따뜻한 군밤이 될 수도 있다. 잠시 오늘 만난 환자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에게 했던 말과 표정을 복기한다. 그리고 나의 표정과 말투 하나라도 밤송이 가시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