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스타트업 발목잡는 투자계약서

입력 2023-10-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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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다니던 중 병역특례 개발자로 한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회사 일도 재밌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도 좋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연스레 선배가 창업한 회사에 합류했다. 당시 사업 아이템도 정하지 못한 초창기였고, 내가 두 번째 멤버였으니 공동 창업을 한 셈이다. 합류하면서 주식 지분을 갖기 위해 1500만 원의 자본금을 보탰다. 사회초년생이라 가진 돈도 신용도 없으니 카드빚을 내서 1500만 원을 조달했는데, 이 높은 대출 금리와 원금을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며 나의 스타트업 첫 창업이 시작되었다.

실패의 교훈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라’

회사가 성공했을까? 그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망했다. 처음 3년은 회사가 잘나갔다. 처음 출시한 게임은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3년 만에 50명 넘는 직원이 다니는 회사로 커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성장 속도는 더뎌졌고, 회사가 멈춰 있으니 일 잘하고 좋은 사람들은 하나둘 먼저 떠나갔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다시 잘되겠지’하며 계속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4년의 세월을 더 보내다가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은 수도 없이 많다. 막중한 책임감을 진 CTO라는 위치에서 개발자로서,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도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해주는 조언이 있다. “투자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미심쩍은 조항이 있다면 꼭 변호사를 찾아가라”는 것이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날 가장 괴롭게 했던 건 다름 아닌 투자계약서였다.

투자자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는 사업 아이템과 전략도 따지지만, 창업 멤버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게 본다. 그러다보니 투자 계약을 할 때 대표나 공동 창업자는 투자 계약서에 이해관계자로 같이 도장을 찍게 되거나, 주주 간 계약서를 작성할 때가 많다.

당시 투자 계약서에 나도 이해관계자로 함께 서명하게 되어 있었다. 기술 개발만 할 줄 알았지 사업이나 계약서는 잘 모르던 나는 찍으라는 대로 수십 장의 계약서에 열심히 도장을 찍었다. 시간이 흘러 7년 차에 퇴사하겠다고 말하자, 투자자는 계약서의 ‘퇴사 금지 조항’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 조항이 있는지도 몰랐다. ‘회사에 5년, 10년 다녀야 한다’는 문구가 법적으로 말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계약 위반으로 각종 위약벌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능한 한 변호사 도움 받는 게 좋아

투자자들과 퇴사를 협의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결국 내가 가진 주식 전부를 회사에 반납하는 조건으로 퇴사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 그렇게 빚을 내서 창업한 회사의 주식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나의 7년간의 세월도 막을 내렸다.

투자를 받는 것은 물론 축하할 일이지만, 투자 계약서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지뢰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스타트업 첫 투자인 종잣돈 투자를 받을 때는 가급적 법률 검토를 권한다. 회사가 잘 안되었을 때 대표의 연대배상 책임을 묻거나, 회사가 이익이 없는데도 특별 상환권을 청구하는 등 독소조항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근에는 독소조항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첫 투자 계약서는 앞으로의 후속 투자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첫 투자자가 좋은 조건을 받았으면 후속 투자자도 비슷한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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