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조' 유동성 단기 부동화 심화

입력 2009-05-22 12:59수정 2009-05-22 16:09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골고루 흐르지 않는 과잉현상 당분간 지속 대안은 없나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늘어난 단기 부동자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 주위로 몰리며 단기부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작 실물경제로는 제대로 흘러들어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4월말 현재 시중에 떠도는 단기 부동자금은 811조3000억원. 이는 3월 말에 비해서는 16조원, 지난해 말 대비해서는 63조4000억원이 늘어난 것. 2007년말 금융권 단기수신 금액이 665조 2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 들어와 20%이상 껑충 뛴 수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단기 유동성을 대규모로 공급했기 때문으로 진단된다.

또한 한은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리고 정부가 예산 조기집행과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부동산 세제 인하, 재건축 규제 완화, 건설사 미분양 아파트와 토지 매입 등 잇따른 규제 철폐와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주요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추가경정 예산 28조4000억원도 곧 풀린다. 당분간 유동성 과잉 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로인한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불거지는 가운데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 자산시장으로 쏠림ㆍ양극화 심화

늘어난 유동성이 실물로 흘러가지 않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다.부동산 정보업체들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대부분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 발발 직전의 가격을 회복한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늘어난 유동성은 증시로 쏠리고 있다. 주가지수는 올 들어 40% 올랐다.최근 하이닉스반도체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청약에는 사상최대인 26조원이 몰려 3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금호타이어 회사채 발행에도 4조원이 몰렸다. BBB등급 이하 비우량 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량이 지난달 4000억원으로 석달째 늘어난 상태다.

문제는 유동성은 풍부해 졌지만 전체 시장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은행들의 대출가뭄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800만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등 금융소외자는 금융기관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지만 금리도 제각각이다. 국채 금리는 4.5%이지만 회사채 금리는 7~8% 수준이라 회사채 쪽으로 풀린 돈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 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시장에 접근 못 하고 있고 대출의 사각지대인 금융소외자들이 이용하는 사금융 시장 금리는 수백%에 달하는 살인적인 금리로 신음하고 있다.

◆ 정부 "유동성 규모 위험 수준 아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연구기관간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오는 4분기쯤 과잉 유동성 환수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금융연구원은“경기 회복이 가시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회수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유동성 규모가 크지 않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기 위해선 세계경제가 동반 살아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막대한 부동자금을 보면 이를 환수하는 대책도 섣불리 나섰다간 실물 경기 회복에 제동을 걸수 있기 때문에서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과잉유동성 논란과 관련 대책마련에 앞서 "정부부처에서 숫자만 더해서 수치를 제시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 분석적이고 과학적으로 파악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대책 마련에 앞서 유동자금의 실체부터 면밀하게 파악해 보라는 주문이다.

지난 20일 취임 100일을 맞은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그 전후의 공식석상에서 줄곧 "지금은 자금이 실물부분으로 좀 더 흘러들어가도록 해야하는 시기"라며 "올해는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은은 21일 '최근 금융시장 동향과 유동성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시중 유동성이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할 정도로 과도하게 공급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며 "현재로서는 유동성 증가가 인플레이션 압력이나 자산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현재의 정책기조가 지속된다면 당분간 계속 유동성 과잉 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경기 회복과 거품 제거라는 묘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몫이되고 있다.

금리인상, 사채 발행, 은행채 매입 중단, 일부 청약 과열 지역의 투기지역 지정 확대 등이 그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재정부는 기업 인수합병(M&A), 녹생성장 등 다양한 투자펀드를 만들어 흡수한다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투자펀드 조성을 통한 유동성 회수 효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만만치 않아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한 실효성은 대책이 확정 시행된 이후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과 관련해 재정부는 시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강남 3구 투기지역해제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유보 등 추가적인 부동산 부양 대책을 자제하면서 부동산가가 이상 급등하는 지역에 대해선 금융 규제인 총부채상환비율(DTI)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미시적인 수단을 총 동원해 제압하겠다는 방침이다.

◆ 정치권 "방치시 경기 위축 지속 우려 정책 변화있어야"

정치권은 과잉유동성이 심화되면 경기 위축이 심화될 여지가 크다며 정부의 정책 방향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정책위의장은 당 5역회의에서 "특히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와 맞물려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택가격 상승 등 단기유동성 과잉에 따른 폐해가 대두하고 있다"며 "단기 부동자금의 증가는 장기대출 시장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자금난 심화로 이어져 경기 위축을 지속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정부의 정책방향을 유동자금이 실물부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실시하고, 현재의 저금리 정책이 전환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어 단기 유동자금이 장기 대출시장으로 흡수되도록 유도하도록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임수강 전문위원은 "현재와 같이 금융권의 중개기능과 이자율 전달경로가 약해진 상황에서 유동성이 증가하면 그 유동성은 특히 부동산 시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며 "유동성 증가의 최대 수혜자는 부동산이나 증시와 관련한 투기세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임 위원은 "당분간 유동성 증가가 계속될 전망임에 따라 부동산 뿐만 아니라 생필품, 서비스 가격 등 전반적인 물가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며 "정부가 당분간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한다고 밝힘에 따라 앞으로 더욱 빈부의 격차는 커질 전망"이라며 정부의 정책 방향의 변화를 촉구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