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사이] 22. 중국 첨단기술 견제하는 美

입력 2023-10-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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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표준 2035’ 기술패권 노골화
美中 글로벌리더십 2차충돌 예고

올해 들어 국제기술표준을 두고 미중 간 신경전이 점차 심해지는 분위기다. 지난 5월 미국 백악관은 ‘핵심·신흥기술에 대한 국가표준전략(CET)’을 발표했다. 통신/네트워크·반도체·인공지능·생명공학·양자정보기술·블록체인 등 8가지 첨단기술 국가표준의 목표와 세부 활동계획을 제시했다. 과거 민간주도의 기술표준방침에서 벗어나 최초의 국가표준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발표된 미 국가표준전략의 핵심은 크게 경제와 국가안보 차원에서 중국 견제와 약화된 미국 주도의 기술표준 리더십 강화로 요약된다. 국가표준전략은 2020년 3월 중국의 ‘국가표준화작업의 요점’ 문건이 발표되자마자 민주·공화 양당이 힘을 모아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발의된 법안이 구체화된 결과물이다.

미국은 6G 이동통신표준과 차세대 기술개발이 자국보다 앞서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불편한 심기와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 4월 중국의 ‘탄소피크 및 탄소중립 표준체계 구축 지침’ 정책이 발표되면서 미국은 더욱 조급해진 상황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1000개 이상의 국가표준 및 산업표준 완성과 30개 이상의 녹색 저탄소 관련 국제표준에 참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향후 글로벌 표준 리딩국가로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기술표준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춤만 추고 돈(로열티)은 미국 기업이 벌어가는 것을 경험한 중국은 정부 주도 국가표준화 사업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그로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美 국가표준-中 신산업표준’ 갈등

전략산업의 고도화, 첨단기술 발전에 따른 국가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중국의 국제표준전략은 더욱 빠르게 체계화되고 있다. 2021년 10월 ‘국가표준화 발전요강’, 2022년 7월 ‘국가표준화 발전요강 행동계획’ 등 중국 국가표준화정책은 매년 구체화되면서 진화되어 왔다.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중국표준 2035’의 향후 방향성을 제시한 첨단기술 국가표준전략이 지난 8월 발표되었다.

중국표준 2035는 차세대 기술의 국제표준을 정립하기 위한 야심찬 글로벌 표준전략의 미래 청사진으로 ‘중국제조 2025’에 이어 미중 기술패권다툼의 제2라운드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미국과의 마찰을 회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국표준 2035’라는 용어 대신 ‘신산업 표준’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쓰고 있다. 공업정보화부·과학기술부 등 4개 부처 공동으로 발표된 ‘신산업 표준화시범사업 시행방안(2023~2035년)’은 기존 국가표준전략의 구체화와 함께 신흥·미래첨단산업의 국가표준 목적과 행동계획·세부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8(신흥산업)+9(미래산업) 신산업 국가표준화’ 전략으로 불리는 이 방안에서 첨단산업의 국가표준화 체계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2025년-2030년-2035년 단계별 국가표준 목표를 제시했다. 여기서 8대 신흥산업은 차세대정보기술(5G 등), 신재생에너지(태양광·회티탄석의 고효율전지 등), 신소재(희토류·첨단무기 비금속 소재 등), 고급장비(산업용 로봇·스마트 검측설비 등), 신에너지자동차, 녹색환경보호, 민용항공기, 선박 및 해양공정 장비를 말한다.

9대 미래산업은 메타버스,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양자정보기술, 휴머노이드 로봇, 바이오제조, 미래 디스플레이(퀀텀닷·디지털 홀로그램·망막 디스플레이 등), 미래 네트워크(6G), 신형 에너지저장장치(ECC)를 가리킨다.

단기적인 2025년 목표를 살펴보면 범용핵심기술과의 혁신융합을 통해 표준 신규제정률 60% 이상, 신산업표준 2000개 이상, 선진단체표준 300개 이상으로 관련 기업 수를 1만 개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선정된 중국표준 중 300개 이상을 국제표준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글로벌 표준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한 이유다.

‘글로벌표준 리더십 유지’ 美 잰걸음

미국 자체 국가표준전략 수립과 동시에 EU·한국·일본 등 동맹국, 우방국과의 첨단기술표준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우선 2021년 9월 미국과 EU가 공동으로 만든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TTC)’ 10개 워킹그룹 중 하나인 ‘첨단기술 표준협력’이 더욱 강화될 움직임이다.

AI·사물인터넷·바이오기술 및 제약·의료기기·적층제조·로봇공학·블록체인·첨단기술 등 8개 영역에서 미국과 EU간 협력이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한미일 간 첨단기술 표준협력도 강화될 조짐이다. 지난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사진 왼쪽부터>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AI·양자컴퓨팅·우주 등 핵심 신흥기술에 대한 국제표준화 협력과 한미일 표준화기관 간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 확산을 통해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의 스마트시티 구축과 함께 중국식 6G, 빅데이터, AI 응용기술표준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중국기업과 협력하고 제품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식 표준을 쓸 수밖에 없는 이른바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개도국과 후진국 입장에서 이미 익숙해진 제품과 기술표준을 바꾸려면 엄청난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 선택과 집중 통해 존재감 키워야

미국은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중국의 기술표준화 전략을 견제하며 미래첨단기술 표준화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공세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결국 미국국가표준(American Standard)과 중국 신산업표준(Chinese Standard)이 충돌하면서 주변국들은 미중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미중 간 펼쳐지는 글로벌 표준 전쟁은 자칫 잘못하면 미국 중심의 동맹블록과 중국 중심의 지역블록 사이 자신들만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권역별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화가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첨단기술표준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시장을 장악함과 동시에 향후 첨예하게 대립할 미중 간 경제안보전쟁의 헤게모니를 잡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글로벌 기술표준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국식 표준영역과 분야를 확대해 나가며, 우리의 존재감과 가치를 키워나가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와 함께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현재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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