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직장 어린이집보다 벌금이 낫다”던 그 분께

입력 2023-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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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는 최근 자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직원들과의 타운홀미팅에서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 번복과 관련, “벌금을 내는게 더 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에 대해 결국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했다. 무신사는 대신 육아가 필요한 임직원 모두에게 위탁 보육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아이를 둔 직원들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조성될 지는 미지수다.

사실 출산‧육아 친화적인 근로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기업은 비단 무신사만이 아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거나 상시근로자가 5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 설치가 의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직장 어린이집 설치의무 이행 실태조사’를 보면 기가막힌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에듀윌‧컬리‧쿠팡 등 27곳에 달한다. 소위 ‘유통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고, 국내 IPO를 준비했던 기업들이지만 직원 삶의 혁신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등 출산‧육아 친화적인 근로 환경을 갖추면 기업의 혁신은 절로 이뤄진다. 세계적 의류업체 파타고니아가 이미 그것을 증명했다. 이 회사는 1983년부터 아동 학습센터 등 사내 보육시설을 설치ㆍ운영 중이다. 로즈 마카리오 전임 CEO는 출산‧육아 친화적 환경 조성 투입 비용의 91%를 세금으로 환급받았고 이직률 감소, 업무 참여 증가 등의 효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직원 충성도ㆍ신뢰도 강화 등 무형 자산까지 포함하면 보육센터 설치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 셈이다.

회사의 근로 환경이 출산‧육아에 보다 편리하게 바뀌면 기업 분위기도 유연해지고 우수한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는 효과도 크다. 다양한 인재가 들어오면, 회사의 인적 자원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인 기업은 사고의 전환이 시급하다. 그저 정부 정책에 억지로 부응하는 게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경쟁력을 생각해야 한다. 기업의 혁신은 사회 분위기와 흐름을 바꾸는 데서 비롯되며 근로환경 변화는 그 출발점이다. 출산‧육아 친화적인 근로환경, 그것이 유통 혁명보다 더 중요한 때다.

▲구예지 생활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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