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누가 저들을 불법 사금융에 내몰았나

입력 2023-09-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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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법정금리 제한에 조달비용은 급증
‘서민대출 비상구’ 대부업체 문턱↑
시장원리 거스르면 ‘역풍’ 깨닫길

‘불법 사금융’의 시대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상담 및 신고 건수는 6784건이다. 2019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한 해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 가운데 최대 7만1000명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와 국회가 파악한 피해 규모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서민경제가 왜 팍팍하게 굴러가나. 급전 창구가 꽉 막힌 탓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이 그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올 상반기에 새로 내준 가계신용대출은 각각 5조8000억 원과 6000억 원이다. 현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두 업계의 대출 총액은 지난해의 60.1%에 그치게 된다. 서민용 비상구가 닫히고 있는 것이다. 급전을 찾는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들에게 불법·합법 창구를 가릴 경황이 있을 턱도 없다.

합법 업계는 왜 비상구를 닫고 있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묶인 상황에서 조달 비용은 커져 대출 문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익히 예상됐던 재앙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2021년 7월 연 24%에서 20%로 인하할 때 적신호를 켠 전문가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다 무시됐다.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는 한술 더 떠 최고금리 적정 수준이 연 11.3~15% 정도라며 추가 인하론을 폈다. 그리 됐다면 불법 거미망에 걸린 서민은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다.

당대의 표준 이론과 상식에 부합하는 정책도 때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빚는다. 20세기 초 호주 당국은 시드니 일대에 페스트가 번지자 균을 옮기는 쥐를 박멸하기 위해 현상금을 걸었다. 그 조치가 빚은 결과는 엉뚱했다. 현상금에 눈독을 들인 주민들이 쥐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금주법이 음주 관습을 때려잡지는 못하고 대신 마피아 조직을 키우는 역효과만 낸 역사적 교훈도 생생하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에 해당하는 사례들이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같은 범주에 속하는지는 한번 따져볼 여지가 있다. 2021년 인하에 동원된 금융당국 책임자들이 미래에 닥칠 부작용과 역기능을 내다보지 못했을 것으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만약 뻔한 결과를 내다볼 안목이 없었다면 같은 범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독히 무능하다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

반대로 뻔한 결과를 내다보면서도 윗선 눈치만 살폈다면 너무나도 불량한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불명예전당에 오를 수밖에 없는 수하들을 시켜 전임 대통령은 지옥으로 가는 선의의 도로를 깔면서 경제 교과서에 길이 남을 반면교사감 발언까지 했다.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하는 것이 구조적 모순”이라는….

불법 사금융이 판치는 시대의 풍속화는 어떠한가. 강원경찰청이 지난 6월 ‘강 실장 조직’이란 불법 사금융 조직을 단속했다. 거기서 드러난 피해 사례는 두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이 조직은 소액 단기 대출을 미끼로 가정주부, 영세상인 등에게 연 5000% 이상 이자를 뜯어냈다. 40만 원 빚이 1년 후에 6억9000만 원으로 불어난 사례도 있다. 돈을 제때 못 갚으면 인면수심의 추심이 시작됐다. 강 건너 불로 여길 수준이 아니다.

저금리 기조가 유지돼야 국가 경제가 잘 돌아가고 서민 살림살이도 편안해지게 마련이다. 철칙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쓴 미국 하버드대 교수 토드 부크홀츠가 내세우는 ‘부크홀츠 가설’도 있다. 이자율이 낮으면 범죄율도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한 채로 정부가 완력으로 찍어누르는 금리는 거센 역풍을 부르는 법이다. 이쪽이 외려 더 무섭다. 높은 이자를 덜어준다며 불법 사채로 내모는 격이니까.

현재 ‘강 실장 조직’ 유형의 거미줄에 걸린 서민 피해자들은 온몸으로 비명을 지른다. 정부와 정치권이 세밀히 살펴야 한다. 나아가 시장에 반하는 법정 최고금리로 인한 혼란을 어찌 구조적으로 걷어낼지 조속히 해결책을 찾을 일이다. 눈만 크게 뜨면 시장금리 연동 등 다양한 대안이 보일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간 낭비나 할 계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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