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돌아본 의회외교

입력 2023-08-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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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두 나라 간 관계는 유달리 밀접해 보인다. 한미일 간 관계 개선을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의 ‘가치 동맹’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냉전 시대의 이분법이 다시 적실성을 갖는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중동 내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권위주의로 퇴행하는 진통을 겪고 있고, 최근 미국이 맹비난했던 사우디아라비아도 역설적으로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며, 무엇보다 민주주의 진영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일부 유럽 국가들의 행보가 ‘가치 동맹’이란 개념이 허상일 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발맞추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랜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동맹의 대상인 미국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우리의 경제 이익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동맹국들 간에 주고받는 관계가 균형감 있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내정치, 특히 의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회외교는 정치인을 대하는 행위

미국은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의 제정을 국민이 선거로 뽑은 의원들로 구성된 입법부에서 담당한다. 외교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다른 나라 대통령과 맺은 협약은 의회의 비준이 없는 한, 언제든지 쉽게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법이 허락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로비를 한다. 정부, 각국 대사관, 기업에서 미국 의회에서 어떤 법들이 논의되고 있는지 면밀히 파악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안 발의를 유도하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도 의회외교에 적극적이다. 로비의 규모와 의원들과의 만남의 빈도로 보면 절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의회외교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과 미국 의회와 의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외교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전통적인 외교행위와 다르다. 의원들은 정치인이다.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이 가장 만나기 꺼려하는 정치인이다. 의원들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자신이 다음 선거에서 재선할 것인지의 여부이다. 미국의 정당은 위계질서가 없는 느슨한 조직이기 때문에 의원들 개인의 자율성이 강하다. 특히 미국 연방 상원의 경우 100명의 의원 각자가 독립적인 입법조직이라고 볼 정도로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즉, 미국 의원을 행정부 소속 공무원처럼 대해서는 안 되고, 당 지도부의 입장을 따르는 행위자라고 보면 안 된다. 맥카시(Kevin McCarthy) 하원의장을 만나 이야기 했다고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포섭되었다고 보면 안 되고, 슈머(Chuck Schumer) 상원 원내대표와 대화가 잘되었다고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설득되었다고 보면 안 된다. 미국 의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역구에서의 입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교훈

작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통과 과정을 보면 우리의 의회 외교가 보완해야 할 점이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내용 중 하나인 전기자동차 보조금 조항은 우리 기업에 불리한 내용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조지아 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전기자동차 공장을 짓기로 하였다. 이에 이 지역(조지아 연방하원 1번 지역구) 하원의원인 공화당 얼 카터(Earl Carter) 의원은 2022년 5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7조원 규모의 투자로 8,1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준 현대자동차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두 개의 수정안을 발의하였으나 기각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카터 의원이 발의한 수정안의 내용이 모두 현대자동차의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없었다는 것이다. 왜 우리 정부, 우리 기업은 카터 의원에게 현대자동차의 이익을 반영하는 수정안을 발의해 달라고 미리 이야기 못했는가? 왜 카터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무려 8,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한국 기업의 이익을 자발적으로 대변하여 입법 활동을 하지 않았는가? 로비의 규모가 크고 미국 의원들과의 만남이 빈번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이 반복된다면 효과적인 의회 외교라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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