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경기와 체감경기는 다르다!"

입력 2009-05-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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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를 만나다

#전문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에게 각각 앞으로 경기가 얼마나 좋아질 것인지 한번 물어보세요. 아마 하늘과 땅 차이의 대답이 나올 겁니다." 경기바닥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인지 무심코 기자가 던진 질문에 그는 이같이 말했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의 경기 진단은 이처럼 간단 명료했다. 이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쉽게 풀어 얘기하기 위해 이코노미스트가 일반인들에게 즐겨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다.

#본문

최근 국내외 경기지표들의 하락세가 둔화되고 심리지표들이 개선되면서 글로벌 주가 상승, 위험 프리미엄 축소 등 금융시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 대출도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고 회사채 발행이 꾸준히 증가함에도 발행금리는 오히려 하락하는 등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도 개선되고 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국내 경기침체 속도의 둔화 및 금융시장 여건 개선 징후를 보이고 있지만 일부 지표에 의한 과도한 기대감은 금물"이라며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간의 엄연한 시차를 적절하게 고려해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출, 내수, 투자가 여전히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하라"며 "경기지표의 하락세가 진정됐다고 해서 경기회복 국면으로 성큼 다가섰다는 식의 해석은 자칫 경기 불황이 장기화 될 경우 시장의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이코노미스트는 "일단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선 지표상의 경기 개선 조짐이 실제 체감경기로 반영되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경기낙관론자들이 경기 회복의 청신호가 켜졌다고 판단하는 주된 근거중 하나인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전분기 대비 플러스 전환이지만 이는 지표상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인 경기회복이 진행되려면 전분기 대비 잠재 GDP 수준인 1.1%로 높아져야 하는데 지난 1분기 성장률은 이에 못미쳐 회복 신호라기보다 그동안 급속히 진행됐던 급격한 하락이 다소 완화됐다는 정도"라고 판단했다.

다만, 전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경기의 회복세는 세계 경기의 회복에 비해 시차를 두고 나타나겠지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침체 국면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적어도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대 경제학과 86학번인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옛 LG투자증권에서 여의도 증권가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현 한국투자증권에서 근무하기까지 지난 9년 동안 이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판채 내공을 다져온 베테랑이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 신동석 전 삼성증권 매크로파트장과 동기동창이기도 한 그는 무엇보다 정확한 경제전망을 내놓고자 보고서 작성에 상당히 신중을 기하는 꼼꼼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제대로 된 분석에 기초해야 정확한 판단과 경제전망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원칙을 지킨다는 게 상당히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코노미스트라면 반드시 이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전 이코노미스트는 "나름의 노력이 서려 있는 결과물이 시장의 예상치에 부합한 결과를 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단순한 숫자 놀음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경제전망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지표가 의미하는 부분을 정확히 파악해 개선책을 찾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시장의 신뢰에 보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와의 일문일답.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 온기가 점차 스며들면서 경기회복 기대감을 점차 높여가고 있지만 고용과 투자 등 실물 지표는 여전히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저금리기조와 각국의 통화팽창 정책으로 그동안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채권과 주식, 원자재, 부동산 등의 가격이 동반 급등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특히, 3월 이후 국내 주식시장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선반영하며 단기부동자금이 일부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유동성 랠리를 이끌었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가격의 바로미터 격인 강남과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거래가 늘어나면서 부동산 바닥론에 대한 기대심리가 형성됐다. 뚜렷한 실체적 규모가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대략 8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시중 부동자금이 이처럼 주식과 부동산 시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예금자와 투자자, 그리고 금융기관 사이에서만 돈이 움직인다. 이는 돈이 움직이는 동기가 실물재화를 손에 넣은 대가를 치르기보다 예금이나 투자로 돈을 불리려는 목적 이상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만 흐르는 경제 분야를 돈과 실물이 함께 오가는 실물경제와 구분해 '화폐경제' 혹은 '금융경제'라고 부르고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간 괴리도 바로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기 후행지표인 고용 부문을 보더라도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4월 실업자수는 93만3000명으로 시장 전망치인 100만명에 근접한 수준이다.

향후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한계기업 퇴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100만명 돌파는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고용한파가 바닥을 쳤다는 일각의 주장은 시장에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경기지표의 급락세가 최근 들어 진정세를 보이고 있어 경기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대내외 금융 및 실물경제에 대한 불안요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지표의 개선에 따른 과도한 기대감은 경계해야 한다.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선호 성향이 회복세로 접어들었고 다시 침체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등 글로벌 경제 전망이 장밋빛으로 점차 물들고 있다. 이에 대한 본인의 판단은?

-앞서 언급했듯이 성급한 낙관론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역시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현재 각국 정부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중인 확장적인 거시정책 효과를 제외하면 민간의 자생적인 경기 회복력은 여전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식과 부동산 등과 같은 자산가격이 최근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고 기업들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지표 개선을 시작으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회복 강도면에서 여전히 약하고 대외여건이 불확실해 아직 지속적인 회복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 경기 바닥론을 언급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진앙지인 미국을 보더라도 경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참담한 수준이다. 펀더멘탈 측면에서 미 부동산 가격은 계속 하락중이고 주택 담보 대출액이 집값을 능가하는 '깡통주택'은 수백만 채에 이르고 있다.

실업은 증가하고 있고 실업 보험을 탈 수 있는 39주간의 기간이 끝나가는 사람도 여전히 수십만명이다. 세수가 줄어들면서 주 정부들도 감원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미 은행권은 최근 자본 규모가 적절한지를 심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없었고, 몇몇은 이마저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월가는 몇 년 안에 은행들은 자본을 확충하고 경제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은행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건전해지더라도 부채를 줄이고 자본을 확충하는 과정이 사회 전반의 부(富)의 감소를 수반하기 때문에 경기회복을 더욱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현 금융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나 이것이 회복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닐 뿐더러 경기 낙관론의 근거는 더욱 아니다. 훼손된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전략은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에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향후 국내 금융시장의 대외 충격에 대한 방어력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2의 경제위기'를 운운할 정도로 현재의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 상황은 지났다고 판단된다.

이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과연 얼마나 튼튼하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입 여부를 추세적으로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이 한국 시장을 이탈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에서 외국인들의 재차 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반작용이 크지만, 기본적으로는 위기에 선방하고 있는 이머징시장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고 한국 시장이 이들 국가 가운데 선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외환시장 불안 등 많은 약점을 노출했지만 다행히 반도체, 조선, 자동차산업 등과 같은 강점을 가진 세계적인 제조업 분야가 많아 상대적으로 위기에 내성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다소 원칙적인 이야기같지만 규제가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작년 정부의 외환정책과 취약한 국내 금융시장 시스템을 재차 확인했다.

아울러 유념해야 할 부분은 금융위기 이후 외국인 자금이 재차 유입된 것은 우리 기업이 체질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 나갔다는 부분보다 길게 봤을 때 환란 이후 나타난 가격 메리트가 더 크다.

국내 기업들도 지난 2000년대 중반 저유가와 저금리 및 전세계적인 호황국면에 편승해 외견상 IMF 위기를 극복한 모습을 보였지만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면서 근본적인 체질개선에는 실패했다.

외환위기 이후 오랜 기간 금융 시스템과 부실한 기업에 대한 수술을 못해왔기 때문에 재차 대외 충격으로부터 한국 경제가 휘청였다. 이 부분의 개선이 미진할 경우 대외 충격 및 국내 경제 전반의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구심은 지속될 것이다.

▲최근 지속된 과잉 유동성에 대한 한국은행의 답변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우려할 정도라거나 환수 조치가 필요한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발언의 진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아직 확연한 경기 개선이 관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정책 당국 특유의 신중함을 반영, 유동성 흡수 가능성은 낮다는 방향으로 해석 가능하다.

한은은 아울러 주식 등 일부 자산의 가격 상승 우려에 대해서도 시장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도달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시장의 예비적 차원의 대응 가능성도 차단했다.

특히, 정상적 상황에서는 자산 가격 버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과잉 유동성은 문제가 되겠지만 현재는 비정상적인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이라 일시적 과잉 유동성에 대한 일련의 정책적 대응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한은은 따라서 직접 유동성을 공급할 필요성은 줄어들었고 약속된 채안펀드나 은행 자본확충펀드 등도 기본적으로 민간에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보이며 당분간 추가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향후 국내경기가 상당 기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동성 환수조치는 국내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약화시키고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만큼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회복과 더불어 국내 경기가 앞으로 회복세로 돌아설 경우 과잉유동성이 자산가격 불안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기가 기조적인 회복 움직임을 보이는 시점에서 효과적으로 유동성을 환수할 수 있는 계획을 한은도 미리 마련중이라고 판단된다.

이와 함께 한은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는 부분이라면 통화환수에 있어 경기회복 시점을 정확히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책 당국의 중요한 과제로 남게될 것이다.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도 과잉 유동성을 제 때 회수하지 못하면 인플레이션 유발될 수 있고 너무 이른 시기에 유동성을 흡수하면 경기가 재차 하락하는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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