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기업, 구조조정 힘겨루기 '팽팽'

입력 2009-05-18 07:27수정 2009-05-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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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버티기 용납 못한다” VS. 기업 “업종 특성 고려해야”

최근 대기업들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정부와 채권단이 구조조정 ‘고삐’를 바짝 조이며 대기업과의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나서고 있다.

18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 구조조정이 흐지부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금융당국 수장의 경고성 발언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대기업은 물론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채권금융기관장에 대한 문책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구조조정의 양축 모두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에 재계는 금융당국에 별도의 건의서까지 제출하면서 맞대응하고 있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시작부터 ‘샅바싸움’이 치열한 양상이다.

◆당국 잇따라 '경고성' 발언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4월 국회에서 구조조정 관련 법률정비와 재원확보 등 구조조정 추진여건이 마련됐다”면서 “앞으로는 기업구조조정이 폭과 깊이를 확대함으로써 근본적이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4일 한 언론사가 주최한 포럼에서 “일부 기업의 경우 몇몇 지표가 다소 개선되는 조짐이 있음을 기회로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아직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우그룹을 예로 들며 “모두 건지려고 하다가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아까운 기업부터 먼저 팔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13일 한 포럼에 참석, “경제위기가 올해 2분기로 이어지며 기업이 보유한 여유자금이 거의 바닥날 때가 된 것 같다”며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환자(대기업)가 수술대(구조조정)에 오르려고 마취주사까지 맞아 놓고 수술을 받지 않으려 한다”며 대기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와 금융당국 수장들의 이처럼 경고성 발언을 잇달아 쏟아내며 전방위로 기업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기업들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최근 경제지표가 다소 호전되면서 ‘일단 구조조정을 피하고 보자’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구조조정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채권은행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점에서 심각성을 느낀 것으로 판단된다. 일부 기업들은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금융당국은 물론 정관계 인사에까지 로비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는 지경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채권은행에 대해 문책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김종창 금감원장은 “채권은행들의 구조조정이 미흡할 경우 해당 은행장을 문책할 수도 있다”면서 경고한 바 있다.

◆조선ㆍ항공 "업종 특성" 읍소

정부와 금융당국이 이같은 압박에 재계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달라”며 읍소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재무약정 체결을 일시적으로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진행됐던 건설 및 중소조선사에 대한 1차 구조조정 때는 남의 일을 보듯 ‘뒷짐’을 지고 있던 전경련이 주요 대기업그룹에까지 ‘칼날’이 겨뤄지자 서둘러 방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전경련은 건의서에서 “지난해 환율 급등 때문에 외화 환산 손실이 급증하면서 재무구조 평가의 주요 항목인 부채비율이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크게 상승했다”며 “업종 특성상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이 불리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조선업종과 항공업 등 영업 특성상 외화부채가 많은 업종은 별도의 고려가 필요하다”며 “재무약정 체결을 일시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선업종의 경우 선박을 수주했을 때 들어오는 선수금이 부채로 잡혀 수주가 증가하면 할수록 부채가 많아지는 구조적인 특성이 있으며, 항공업은 비행기 도입으로 인한 외화 부채가 환율 상승으로 인해 증가하면서 부채비율이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채권은행들은 일단 조선업종에 대해서는 충분한 참작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조선업종의 부채비율이 높은 것은 선수금 때문인데 배가 모두 건조되면 매출로 다시 잡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금융채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 “기업 평가에서 부채비율은 중요한 지표중의 하나지만 부채비율이 높다고 해서 모두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항공업의 ‘환율 읍소’에 대해서는 경우가 좀 다르다는 게 채권은행들의 판단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항공업은 이미 수십년간 이어온 산업인데 환율 변동에 대한 대비를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환율 문제까지 배려한다면 막상 구조조정을 추진할 대상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재계를 대표하고 있는 전경련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선도하기 보다는 주요 대기업그룹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향후 정부와 채권은행들의 구조조정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들이 '버티기'로 일관할 지 아니면 자발적인 ‘군살빼기’로 경쟁력 제고에 적극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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